옛날, 어느 마을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잠잘 때, 밥 먹을 때 빼고는 입을 쉬는 일이 없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가까이 있으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느냐. 옆집 똥개가 새끼 낳은 일부터 아랫동네 아낙이 바람난 일, 나라님 흉보기, 어제저녁 밥상의 반찬, 죽다 살아난 할아버지 이야기, 조상님 묏자리까지 인간세상 일은 다 관여하고 다녔다. 남의 일이라면 상대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나르는 탓에 피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훈장님 댁에 모여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귀가 따가워 일할 수가 없소.”
“그가 안 해도 되는 말을 옮긴 탓에 나는 아직도 마누라와 전쟁 중이라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이제부터 우리 모두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맙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못 듣는 척했다. 들어주는 이가 없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마을을 떠날 결심을 했다.
“좋아. 말을 하면서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거야. 내가 직접 들을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다니자.”
그는 그렇게 봇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세상은 넓고 말할 사람은 많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말을 지어내고 옮기며 행복하게 몇 년을 보냈다.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어느 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풍광이 아름답구나. 신선이 따로 없네. 이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되겠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 바닷가를 걷던 그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향해 다가가자, 파도가 바닷가에 선 나무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래서 토끼가 용왕님에게 뭐라고 했느냐면…….”
파도의 목소리가 신기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파도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단 말이야? 전부 들어 말하고 다녀야지.’
그는 바위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가 다리가 저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슬쩍 다리를 펴다가 솔잎을 밟고 말았다.
“어머나, 깜짝이야.”
솔잎의 소리에 놀란 파도가 저만치 바닷속으로 도망쳤다.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파도야. 도망치지 말고 더 이야기해다오. 뒷내용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구나.”
하지만 파도는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제가 했던 말은 용궁의 비밀이랍니다. 오로지 해안가의 나무만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용궁의 비밀이라니, 더없이 탐나는 이야기였다. 용궁의 비밀을 전국 팔도에 말하고 다닐 생각에 잔뜩 들뜬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내 그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나무가 되마.”
그러자 그는 다리가 땅에 박히고 피부는 점점 딱딱해졌다. 손에는 싹이 돋았고 머리칼은 초록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소나무가 되자 입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말하는 데에 눈이 멀어 영영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에게 입이 없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소나무가 되어 아직도 정동진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언제부턴가 어색한 사이를 메우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었을까?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확인하고 취향이 우회적인지 노골적인지를 확인한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문화를 나누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티켓 단 두장만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공간이다.
“효진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 저녁이요? 야근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다른 건 아니고, 저한테 뮤지컬표 두 장이 생겼거든요. 혹시 안보셨으면 같이 보실래요?”
“우와, 그거 엄청 빨리 매진 된 거라 구하기 힘든 건데. 갈래요!”
민수는 효진이 일하는 곳 상사이다. 효진이 이곳에 입사한 후로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민수의 컴퓨터 모니터로 효진이 보낸 매신저가 날아왔다.
‘대리님! 이따 퇴근하고 정문 앞에서 봬요. 저녁은 제가 쏠게요^^’
민수는 그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했다. 어렵사리 친구놈에게 구걸하다시피 표를 산 것이, 거의 표 두 배 가격을 주고 산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모처럼 칼퇴를 하고 나서니 멀리서 효진이 보였다. 하늘높이 손을 들어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효진은 정말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다며 재차 기쁨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근처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화려했고 잠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공연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했고 그중에 효진과 민수도 속해있었다.
효진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더니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말했다.
“가만 보면 서울은 참 희한한 동네인 것 같아요. 동네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
“음,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잖아요. 이렇게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는것도 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일 테고. 그런데 그 속에서 이렇게 숨 좀 돌려보겠다고 공연도 보고 미술도 관람하고 하는 걸 보면 참 딱해요. 서울사람들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네. 서울이라는 동네가.”
“그렇죠? 서울에 야경이 멋있다는데 보면 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효진은 자기감정에 취해있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효진과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음으로 효진의 생각과 가치관을 들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냥 어린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속으로 살짝 당황스러웠다.
효진은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감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효진의 두 볼이 약간 발그레 했다.
“전 예술의 전당이 참 좋아요. 여기에선 숨통이 좀 트인 달까? 친구와도 좋고 연인도 좋고 가족도 좋고. 누구와 와도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직장 상사와도 좋고!”
효진은 빙그레 웃었다. 효진의 말대로 서울의 문화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랬다. 누구와 와도 즐거운 곳이었다.
민수는 겉옷을 벗어 효진의 어깨에 슬며시 걸쳐주었다. 효진도 나쁘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저녁 오페라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희미한 노랫소리에 맞춰 예술의 전당 앞 분수가 춤을 추었다. 분수에 오색빛이 비춰지자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효진이 자그마한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반짝이는 서울의 밤은 그렇게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아, 오빠! 이번에는 진짜 맛집이라고 했잖아!”
한바탕 화를 내려다 오빠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 또 허탕이었다. 국밥 한 그릇 먹자고 부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빠도 나도 날이 갈수록 짜증만 더해갔다.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그 유명한 서면 돼지국밥을 맛보고 만 것이었다.
오빠의 제대 기념으로 남매끼리 떠났던 기차 여행. 하지만 여행 초반부터 예산을 초과해버린 탓에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사진만 찍는 스파르타식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산의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았지만, 배가 고프고 지치니 즐겁지가 않았다.
그 때 내가 묘안을 내 놓았다. 서면에 살고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생각 난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깜짝 방문한다면 끼니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용돈도 넉넉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드려 볼 것을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를 채워 두지 않으셨던 것이다. 곤란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우리를 서면 시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친구 분께서 하시는 유명한 국밥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 꼬맹이들이 벌써 이만큼 큰 거여?”
처음 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우리의 손을 잡으셨다. 오빠도 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친구 분께서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할아버지 댁의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고 한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도, 그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손수 국밥 두 그릇을 말아다 주셨다.
“순자 그 할망구가 지금까지 살아만 있었어도 이 양반이 여기까지 걸음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여. 그 할망구는 뭐한다고 그렇게 일찍 가 버렸대.”
넋두리 반, 국밥 반이었다. 그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절친한 사이셨던 모양이었다. 친손자를 보듯 따뜻한 눈길에 마음이 참 편해졌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때 먹은 그 국밥이 정말이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 오빠와 나는 그 때 그 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온 서울의 돼지국밥 집을 다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대기와 부추를 넣는 것은 물론 고기 위에 새우젓까지 올려 정석대로 먹었지만, 부산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엄마는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실망 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기로 소문난 우리 남매지만, 이번엔 유독 별나다고 하셨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빠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오늘 밤 고백할게 너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 부산으로 떠나자’라는 가사의 노래까지 틀고 있었다. 정말 부산으로 가야만 그 돼지국밥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걸까. 국밥이라 우습게 봤는데 도무지 그 맛을 다시 볼 수가 없으니, 괜한 집착만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엄마는 새벽 내내 부엌을 들락거리셨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식탁 위에 돼지국밥이 차려져 있었다. 아마 밤새 돼지 뼈를 삶으신 모양이었다. 집에서 돼지국밥이라니, 이게 웬 일인가 했더니 엄마가 나고 자라신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지 하도 오래 돼서, 제 맛이 나려나 모르겠네.”
엄마는 멋쩍으신 듯 웃으셨지만, 우리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한 숟갈을 떠먹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찾던 그 맛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만든 돼지국밥의 맛보다 부산에서 먹은 돼지국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돼지 뼈를 삶고 옮기다 데셨는지 엄마의 검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돼지국밥 찾기를 그만두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말처럼, 맛의 비결은 역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건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풀죽어 있던 내게 가장 아끼는 오르골을 준 것이었다. 조그마한 오르골이 돌아갈 때면 아름다운 소리가 리듬에 맞추어 흘러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였다. 너는 발레리나가 꿈이라고 했다. 꿈이라기보다는 장래희망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너는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나는 그런 너의 발가락을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멋진 꿈이다. 세계최고가 되려면 발레를 얼마나 잘해야 할까?”
“아마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 상도 받아야겠지.”
꽤나 당찬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너를 보니 정말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발레복을 입고 사뿐사뿐 공중을 나는 너를 떠올리니 멋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국적인 멋은 달리 형용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멋’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달 까.
반면 나는 여전히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네가 내 손에 쥐어주었던 오르골을 꺼내보았다. 약간은 녹이 슬어보였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래, 엄마가 들려주던 가야금 소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소리를 비슷하다고 느낀 건 왜일까.
서재 깊숙한 곳에 먼지와 함께 박혀있던 가야금을 꺼냈다. 엄마를 따라 몇 번 튕겨본 적은 있었으나 손끝에 물집이 잡힌 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악기이다. 다른 아이들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것이 괜히 싫었던 적도 있다.
후. 하고 가야금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털어냈다. 세월은 흘렀어도 가야금은 여전히 쟁쟁한 소리를 냈다.
손끝으로 세게 튕겨보았다. 여전히 손끝이 아렸다. 한 번 더 튕겨보았다. 공중을 가르고 소리가 울렸다.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났다. 엄마는 뜬금없이 가야금은 왜 꺼내느냐고 청승맞다고 말했지만 내심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꽤 유망한 가야금 명인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을 살포시 무릎에 얹어 손끝으로 음을 집어내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엄마는 나도 엄마를 따라 가야금을 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를 모른척했다. 가야금은 엄마의 직업정도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좀 더 강하게 뜯어야지 소리가 나지.”
엄마가 한참을 듣고 있다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대로 줄을 강하게 뜯어보았다. 울림이 들어간 소리는 꽤 웅장했다. 눈을 감고 백조의 호수의 음을 짚어보았다.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처럼 내 손끝을 타고 고고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가야금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가야금은 그저 그런 악기였는데 어쩐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뭐하나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없는 내게도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한참을 말없이 가야금만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거야. 그러려면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서 상도 받아야겠지.’
나는 어쩐지 네가 가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너는 녹이 슨 오르골처럼 흔들리고 있지는 않을 까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녹이 슬지 않는 가야금은 점점 더 멋드러진 소리를 냈고 그 위에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보니 웬 택배하나가 할아버지에게 와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엔 할아버지의 오랜 고향친구의 이름이 적혀있다. 웬일인가 싶어 상자를 열어보니 고향에서 보내온 홍어다. 상자를 열자마자 코끝까지 전해지는 냄새를 보아하니 잘 삭혀진 홍어임에 틀림없다. 홍어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을 떠올리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이다. 영산포 하류에서 단출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부셨다. 아버지는 늘 배를 타셨고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실 때면 집에는 늘 아들 혼자였다. 아버지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나가시면 하루 이틀은 물론이고 길게는 열흘이나 한 달 동안도 못 들어오신 날도 있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치면 더욱이 그랬다.
어린마음에 아버지에게 배 타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울고불고 떼를 써 보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우리 두 식구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가 열흘 동안이나 소식 없이 배를 타고 나가도 돌아오는 날이면 배에 잡히는 것은 고작 두세 마리가 전부였다. 다른 선원들과 잡아온 물고기들은 이미 다른 동네에 팔고 남은 작은 물고기라도 챙겨 온 것이다. 그나마도 오랜 시간 바다에 있어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러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오늘은 꼭 일찍 오셔야 해요. 아버지랑 먹으려고 남겨둔 생선이 있단 말이에요.”
“알겠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오마.”
알겠다며 빙긋 웃어 보이시던 아버지는 그날도 그 이튿날도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매일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 때 배 한척이 들어왔고 그 배에는 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와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생선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항아리에서는 이미 코를 톡 쏘는 진한 향이 나며 생선이 푹 삭아있었다. 할아버지의 실망한 모습을 본 아버지는 원래 이 생선은 이렇게 냄새가 날 때 먹어야 제 맛이라며 아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왜 싱싱할 때 먼저 먹지 않고 기다렸어. 이 아비가 언제 올 줄 알고….
매일 놀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하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생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다려준 아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아버지는 삭혀진 생선을 크게 한입 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톡 쏘는 맛이 나며 상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색이 변하지도 않고 먹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배가 아프다거나 탈이 나지도 않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때의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에 하늘도 감동하여 탈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할아버지는 홍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여전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생각해보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잘 삭혀진 홍어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홍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에게 홍어는 아버지의 또 다른 마음이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당신 힘들었던 거 알아. 누구보다도.”
이제는 원망이나 설득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원망이나 설득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은 있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해주길.
“연락 자주 할게. 아이들 데리고 자주 내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를 내고 시부모님께 일러보기도 하고 협박까지 했던 아내였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최고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아내였다. 생활비 한 번 허투루 쓴 적 없는 모범답안과 같던 남편이 돌연 귀농 생활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권유였으나 나중에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묵묵히 함께 살아온 30년. 아이들을 다 키워놨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주일간 아내는 잠도 제대로 못 들고 남편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에 변함없음을 알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젠 이런 실랑이도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남편은 홀로 횡성으로 떠났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싫다고 할 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고집불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작정 우겨 내려온 것이지만 단출한 살림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귀농 생활이었다. 일단 무작정 장에 가보기로 한 남자는 우연히 소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바라보니 어릴 적 남편과 닮았다. 남편은 큰 눈에 겁이 많아 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와 남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논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밭을 갈 일도 없는 남자였지만 남편은 소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내가 바라보았다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아내가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이젠 소까지 키우느냐며 농사꾼이 다 됐다고 웃는다. 아내가 오랜만에 웃는다.
아내도 자신이 빙긋 웃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쩍 말을 돌린다.
“혼자 피죽도 못 얻어먹고 사나 했더니 제법 살림꾼 다되었나 보네. 딸린 식구도 있고. 하긴, 횡성 하면 한우지. 이 소는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아내는 겁이 많고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향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여물을 다듬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소를 끔찍이 생각하던 횡성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로 접어들자 횡성사람들은 소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가 돌아갔다. 아내는 은밀히 여기 내려와서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빠, 이번 연말에는 어디 갈 거예요?”
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보고 싶은 곳이 가득한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산통을 좀 깨야겠다. 나도 내년에는 꼭 내 시집을 내리라 결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멀리 가지 말자. 연말 되면 카운트다운 하는 곳 있잖아. 거기 가서 타종식 한 번 보고 오는 건 어때? 아빠가 옛날에 가 봤는데, 가수들도 많이 오고 불꽃놀이도 해.”
싫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나 하고 있었는데, 자기도 그런 의미 있는 곳에 가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을 보니, 딸도 이제 어린애는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도 꼭 한 번 직접 타종식을 보고 싶었다며 한 수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의 연말 맞이 여행, 아니 연말 맞이 나들이 장소가 결정되었다.
서울 시내 어디가 북적거리지 않겠냐마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북적임이 있다. 바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일대. 시간이 비는 오후면 교보문고에 들러 소설책을 한 권 읽고 가기도 하고, 아직 초등학생인 조카들을 데리고 세종대왕 동상과 그 아래 숨겨진 박물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던 촛불집회가 열렸던 곳도 바로 이 세종대왕 동상 앞이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사회 운동을 하러 나왔을 때, 회사원들이 건물 창밖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며 무언의 응원을 보내던 장관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졌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거닐었던 경복궁이 동상 너머에 있었었으며, 청계천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에도 이곳에서 시작되는 물길을 보러 왔었다.
그렇다. 내게 있어 광화문은, 내가 아는 수십 년의 서울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세 시간 쯤 여유를 두고 광화문에 도착했다. 몰려드는 인파를 한 번에 감당할 수 없어 타종식이 있기 얼마 전에는 교통을 통제하기 때문에 종각에 미리 가 봐야 소용이 없으니, 그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 광화문 일대의 문화를 느껴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은 또 크리스마스였기에, 거리는 아직 오색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가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행사를 한 번에 챙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였다.
나는 아내에게 근래에 크게 유행했던 로맨스 영화의 원작 소설 한 권을, 아내는 딸이 요새 푹 빠져 있는 외국 밴드의 앨범 한 장을, 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건실한 문화 향유층이야. 문화 시민이 달리 뭐 있겠어?”
딸이 건넨 말에 한바탕 웃으며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청계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러 왔는데, 청계천에도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조명들이 밝혀져 있었다.
“여기서 예전에 등 축제 정말 예뻤는데. 아빠가 매일 그렇게 광화문 노래를 불러도 안 와 닿더니, 그 때는 정말 세상에서 여기가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았다니까요.”
그래, 문화라는 것이 말로 백 번 들어 무엇 하겠는가. 한 번 눈으로 보면 단숨에 반해버릴 것을. 내 철학을 늘어놓았다가는 면박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마음속으로 할 말을 삼키며 웃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제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 ‘새해 복 많이 받아!’하는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오죽하면 이 일대에서만 휴대전화가 반쯤 불통이 되었겠는가. 사람들의 입가에는 하나같이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신나게 소리를 지르다 보니 행사는 모두 끝났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삼천 원짜리 싸구려 불꽃이 팡팡 터진다. 화약재가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데, 아무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옷을 털어내지 않았다. 우리 가족도 노점상에서 파는 핫도그 하나씩을 들고, 축제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광화문을 걸었다. 평소에는 길거리 음식이라면 학을 떼는 아내도 오늘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지금 이곳이 바로 살아 숨 쉬는 서울 문화의 거리였다.
“유리씨, 괜찮겠어? 오를 수 있겠냐고.”
걱정인지 귀찮음인지 모호한 어조로 말하는 팀장의 목소리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요. 피해 안 가도록 천천히 뒤따라갈게요.”
팀장은 대답을 다 듣긴 한 것인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바람을 남기고 다른 팀원에게로 가버렸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 눈물에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져 남은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삶처럼 짐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유리는 선천적으로 하반신 근육과 뼈가 약해 약한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곤 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언제나 괜찮겠어?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 한 번씩은 다 타본 자전거도 타본 기억이 없고 그 나이 때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다 해본 고무줄놀이 한번 못해봤다. 사실 해볼 생각도 못 해봤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인 운동회 날의 기억을 묻는다면 사실 나는 즐거웠지만 엄마는 오히려 엄마가 학교에 말해 줄 테니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뒤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그녀다. 어릴 적부터 늘 고민이면서 꿈이었던 문제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갖는 첫 워크숍을 치악산으로 온 것이다. ‘악’이 들어가는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하여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다고 한 것쯤은 유리도 안다. 그래서 엄마는 물론 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우기고 우겨 따라가겠다고 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어 왔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오면서 그녀가 생각한 것이 있고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워크숍을 따라 오기로 작정한 후 줄곧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코끼리와 말뚝 이야기이다.
서커스에서는 작은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메어둔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기 코끼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자란 코끼리는 나뭇가지만 한 말뚝을 충분히 뽑아내고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불가능 할 것이라고 되뇌어왔기 때문이다.
다시금 팀장이 내게로 왔다.
“유리씨. 유리씨가 간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않을게. 근데 유리씨도 참 유별나다. 남들은 오르기도 전부터 힘들다고 저렇게 울상인데 굳이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말뚝에서 좀 벗어나 보려고요.”
유리는 발가락을 잠시 꼼지락거려본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어쩌면 자전거도 타고 고무줄놀이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어 놓은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한 걸음 발을 떼어본다. 어쩐지 발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