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초콜릿, 딸기우유…….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한다. 평소에는 군것질거리를 사 먹이지 않으니 이때다 싶은 것이다. 슈퍼에 도착하여 고른 것들은 온통 단것들이다. 당당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의기양양하게 과자들을 품에 쏙 넣는다. 내가 빼앗으려고 하면 할아버지 품으로 쏙 숨는다.
“아빠도 참, 애가 떼를 써도 이렇게 단거 막 먹이면 안 된다니까.”
“자주 먹이지도 않는데 뭘 그러냐. 그리고 애들 때는 다 이런 거 먹고 싶은 거야. 그리고 꼬맹이가 이렇게 매달리는데 할애비가 되가지고 어떻게 모른 척하냐?”
“그걸 노린 거라니까. 아빠, 요즘 애들 다 유기농이다 몸에 좋은 것들만 먹이는 거 몰라요? 이렇게 슈퍼에서 파는 거 입맛 들면 못쓴다니까. 과자도 마약과 같은 거야. 먹다보면 계속 먹고 싶어진다니까.”
“유난은, 너도 다 이런 거 먹고 자랐어.”
“요즘 애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아토피 그런 것도 잘 생긴단 말이야.”
“알겠다, 알겠어. 그럼 저기 곶감을 가져다 줘야겠구나.”
아이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애교를 떨면 어찌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자식보다 손주새끼들이 더 끔찍하게 예쁘다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가 사달라고 하는 걸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늦게 결혼한 딸내미가 노산으로 힘겹게 얻은 자식이니 친정 부모로서 말은 안 해도 애를 많이 태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를 만지면 닳을까 애지중지 하신다. 구부정한 허리는 이제 다시 반듯해지기를 포기한 화석처럼 굳어져 있고 지팡이 없이는 오래 걸으시지도 못하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힘든 줄도 모르신다고 한다. 요즘말로 손주바보가 따로 없다.
아이를 불러 곶감을 내미니 아이는 냄새부터 킁킁 맡아본다. 감을 말린 것 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먹는 건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해도 뒷걸음질을 칠뿐이다. 그러자 좋은 묘책이 생겨났다는 듯 아이를 무르팍에 눕히더니 재미있는 곶감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말에 냉큼 할아버지 무릎에 누웠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한마리가 먹이를 구하려고 마을 어귀까지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단다. 그런데 어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야. 그래서 아기 엄마가 아기에기 "귀신 온다." 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호랑이 온다."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더욱 크게 우는 것이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곶감 줄까?" 그랬더니 아기가 울음을 딱 그쳤다는 거야. 그것을 들은 호랑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곶감이로구나 생각했지. 그 뒤로 곶감소리만 들리면 뒤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는 구나.“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아이는 이내 할아버지 손에 들린 곶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역시 단순하구나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났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자기 앞에 있다고 신기하다며 한입 베어 문다.
생각보다 단맛이 돌아서인지 아이는 과자를 내려놓고 곶감을 찾았다. 곶감이야기 때문인지 아이는 그날이후로 곶감할아버지네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려놓은 곶감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며 껄껄껄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곶감 하나 줄까?”
“웅 할아버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 그럼 시작해볼까? 옛날 옛날에~”
오늘도 입단속 철저히 하거라.
상궁마마님의 낮고 지엄한 목소리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곳은 말 한마디도 새어나갈 수 없는 지밀이다. 나는 지밀나인 중 하나로 나이가 가장 어리다.
문과 문 사이를 두고 나오는 말소리. 상궁마마님들이 하는 이야기. 왕후와 상궁이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생과방이나 소주방에서 새어나오는 잡다한 이야기 등이 떠도는 곳, 비밀이 만들어지나 절대 새어나가지 못하는 곳 중 하나가 된 곳이다.
“월이 너 그 이야기 들었니?”
“또 무슨 이야기?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떠도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전하께서 궐에 이야기꾼이라도 들였단 거냐?”
“쉿, 마마님께서 입조심 하란 말 못 들었어? 전하라는 단어도 입에 함부로 올리지 못 하는거 모르니?”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는 많은데 도무지 말할 곳이 없잖아. 그나저나 아까 하려던 이야기는 무어냐?”
“아, 그게. 전하께서 사모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을 위해 매일 밤 가야금을 탄다고 하더구나.”
“뭐? 중전마마 말고 사모하는 여인이 따로 있다고?”
“쉿, 목소리 좀 낮춰. 네 덕에 제 명에 못 죽겠다. 왜 가락국에서 온 악성 우륵이라는 자 있지? 그 자가 가야금을 잘 탄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 자를 통해 노래를 전한다나 뭐라나.”
“게 거기서 무엇을 속닥거리는 것이냐?”
참모의 불호령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잡언이었습니다.”
“입 함부로 놀렸다가는 다들 알지? 쓸데없는 말 흘리지 말고 일이나 해야 할게야.”
가야금이라. 우륵이라는 자를 통해 노래를 띠운다. 전하께서 꽤나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가야금에서 참으로 기묘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저 기교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튕기고 뜯는 그 음정 하나하나에 무언가 있었어.
드르륵 문이 열렸다. 지밀나인 두 명과 김상궁과 조내관만이 동행하여 우륵을 만나러 간다는 명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전에 생과방에서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입을 함부로 놀릴 수 없었던 월야는 입을 꾹 다물고 김상궁의 뒤만 바짝 쫒았다.
구슬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하께서는 꽤나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눈을 감으시고는 구슬픈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흐음 하고 전하의 입에서는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륵이라는 자가 전하의 심정을 너무 잘 꾀고 있었던 것일까. 노랫가락에 온 신경을 쏟느라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었고 침도 함부로 삼킬 수가 없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좀 더 가락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확실히 궐 안에 있는 악사들과는 다른 음색이었다. 무언가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전에 생과방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여인을 위해 올리는 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 하마터면 감탄사를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처소로 돌아온 뒤 날이 밝고 나인들 몇 명이 소주방에 모여 있었다.
“얘, 너 어제 우륵이라는 자의 가야금 가락 들었다며? 어때? 정말 전하께서 여인을 위해 띄우는 가락이더냐?”
“글쎄요. 저는 모릅니다. 그저 가락만 들은 것이었지요.”
“얘가, 자세히 좀 말해봐.”
“정말이어요. 가락이 구슬프고 또 구슬펐지요. 그것이 여인을 위함인지 나라를 위함인지는 모르겠어요.”
“아이 재미없어. 됐다 얘, 가봐.”
언젠가 전하의 용안을 뵙는 날. 전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을 것이라 말씀드려야 겠다는 것뿐이었다.
주말의 밤은 언제나 시끌시끌하다. 극장 앞은 아직도 오늘 공연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긴장과 환호성, 불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극장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의 조용한 극장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입장권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가운데서, 나는 재빨리 다음 공연을 위해 연필을 놀렸다.
“윤 작가님, 벌써 또 시작하셨어.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무대 철거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스탭들 가운데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도 그 쪽을 보고 씩 웃어 주었다.
내가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 새 삼 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여 순수 예술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내 기가 꺾인 지도 삼 년이 지났다.
삼 년 전, 나는 내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하던 꽉 막힌 예술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내 손끝에서 탄생한 시나리오가 시처럼 아름답고 고상한 언어들로 가득 차 있길 바랐다. 정작 요즘엔 시인들도 그런 아집에 갇힌 언어들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여하튼, 나는 내가 배워 온 모든 것들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철학이나 심리학 따위로 내 시나리오의 절반 이상을 채워야 직성이 풀렸고, 어쩌다 한 번씩 내 시나리오로 공연을 올리게 되면 무지한 관중들에 대한 분노로 밤새 술을 마셔야 했다.
“연극에 대해, 시나리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오니 당연히 반응이 시원찮을 수밖에 없지!”
연극계에서 꽤나 입지를 굳힌 선배들이 조언이랍시고 내 놓는 대중성에 대한 문제는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조금만 배운다면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선배들도 똑같다며 테이블을 뒤엎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나를 바꾼 것이 바로 이 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마임 공연이었다. 선배들이 하나같이 말하던 관객과의 호흡. 그 날도 모니터의 하얗게 빈 화면 위에서 홀로 깜빡이는 커서만을 바라보다가, 내게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 호흡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찾은 극장이 바로 이 곳. 작은 극장 돌체였다.
처음 보는 마임 공연은 내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무대 위의 피에로와 어릿광대들이 펼치는 공연은 내가 그렇게 집착해 왔던 언어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무시한 공연이었던 것이다. 한껏 무게를 잡은 채 절규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비극의 주인공들 대신에 외발자전거를 타거나 저글링을 하고, 마술을 선보이는 광대들로 채워진 무대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공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침묵을 지켜야 할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며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뭐 이런 공연이 다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풍선을 불던 어릿광대 하나가 다가와 내게 풍선으로 만든 꽃을 하나 건네주었다. 아이들이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 있던 나를 내버려둔 채 어릿광대는 무대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그게 이 극장과 나의 첫 번째 이야기다.
“아니, 어떻게 그런 곳이 다 있어?”
분노가 섞여 있는 내 물음에 선배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긴 원래 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이나, 아니면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극도 많이 올라 와. 인천 클라운 마임 축제도 거기서 열리고.”
“대체 비전문가들을 왜 무대에 올려? 전문 연극인들만으로도 어려운데.”
내 물음에 선배는 네가 처음에 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지를 떠올려 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기이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대여섯 명의 고정 멤버가 한 달에 한두 번씩 모이는 그 술자리에서, 나를 뺀 모두가 아주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직 나만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을 다 지고 있는 양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 한 편을 들고 이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 동안 써 온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모두 버렸기에, 나는 이것을 내 첫 번째 시나리오라고 소개했었다.
내 첫 시나리오로 공연이 올라가던 날, 나는 이 극장을 처음 찾았던 날처럼 관객 틈에 앉아 있었다. 이미 정해져 있는 무대 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무대와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태어나고 있었다.
파란 눈에 오뚝한 코. 검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내 이름은 레이나이다. 아빠는 한국계 독일 사람이었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아빠를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아빠가 있다. 새아빠. 새아빠는 재미교포 2세다.
엄마는 이국적인 취향을 가졌나보다.
어렸을 때 나는 누구보다 애국가를 힘차게 불렀고 누구보다 빨리 외웠다.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운동회 날 개회식에 대표로 조회대에 올라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런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기로는 신선한 문화적 느낌에서랄까 그래서 나를 쓴 모양이었다.
새아빠는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다. 항상 나를 존중해 주었고 내 앞에서 엄마와의 애정표현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난 새아빠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내가 친아빠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안 궁금해 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돌아가셨는지 일찍이 이혼을 하신건지조차도 모르고 지냈으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어야 하나 아니면 엄마가 먼저 말해줬어야 하나. 이건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들 내가 우리나라 말을 능숙하게 하는 것에 대해 신기해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으나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외국인이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같이 느껴졌을 테니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남해로 나를 데려갔었다. 그곳에는 공교롭게도 미국마을 그리고 독일마을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빠를 닮은 사람도 새아빠를 닮은 사람도 많았고 나는 그들속에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열세 살이 되던 날 처음으로 친아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아빠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했고 특히 오뚝한 코가 제일 멋있었다고 했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나중에 내가 다 자라고 나면 이곳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짓궂게 미국마을에서 살 것인지 독일마을에서 살 것인지를 물었다. 엄마는 내 콧잔등을 가볍게 치며 다랭이 마을에서 농사지으면서 살겠다고 하기도 했다. 거짓말.
어렸을 적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싸우는 걸 몰래 엿본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못된 소리를 하기에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나보다 생각을 하긴 했으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친아빠가 아직 돌아가신 건 아닌가 보다 라는 일종의 정보만 얻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 정보를 듣고 난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친아빠에 대한 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다. 친자식이 아빠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못된 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빠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쉽게 내뱉지 못하며 자라온 것도 있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엄마가 다시 만난 사람도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나는 아빠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새아빠가 고마웠다.
나는 사실 엄마보다 새아빠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새아빠는 아빠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먼저 물었다. 나는 그저 새아빠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나는 엄마가 아빠와 왜 헤어졌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내가 만나볼 수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아빠에게.
내가 아빠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독일 사람이고 코가 오똑하며 예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가끔 엄마 몰래 혼자 남해를 찾아오곤 한다. 독일 마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 아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흰 벽에 주황색 지붕을 한 어느 따뜻해 보이는 집에 나와 닮은 오뚝한 코를 가진 독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언젠가 나와 닮은 외국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주 반가운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볕이 좋은 주말 오후에도 체육관은 기합소리와 땀 냄새로 그득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씩 달고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나같이 종목들과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국가대표’라는 직분은 같기에 오늘도 기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고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웃음으로 넘긴다. 4년의 기다림을 알기에 그들은 참고 또 참는다. 누군가는 메달이라는 상징물 혹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세계적 이슈로 보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나라의 미래일수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쓰러지겠어. 메달 따고 싶어 하는 맘은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 메달 따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메달 따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몸을 힘들게 해. 좀 쉬었다 하자.”
한준은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복이 흠뻑 젖었다. 파트너 희진의 만류에 겨우 기구를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준에게 희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
“무슨 소리야 그게.”
“한준이 너, 어머니 찾겠다고 그러는 거잖아. 메달 따서 당당하게 찾아뵈려고. 아니야?”
한준의 부모님은 한준이 12살이 되던 해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고 한준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한준은 어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준은 메달을 따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을 때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오로지 운동만 했다.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하나만을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주말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외식하자 외식.”
생각 없다는 한준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체육관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바깥바람을 만끽하며 걷는 희진과 달리 바닥만 보고 걷던 한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바로 앞에는 낡은 구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눈물이 그렁한 채로 한준 앞에 서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한준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준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돌아가세요.”
“저기, 한준아. 밥.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점심만 같이 먹고 가면 안 될까?”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희진이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이 파트너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한준이 어머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헤. 아, 마침 저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제가 오늘 운동스케쥴이 있었던 걸 깜빡했지 뭐에요? 그래서 그런데 두 분 이서 식사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우리 한준이 파트너 분이세요? 반가워요. 같이 식사하면 좋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다음에요. 한준아, 밥 맛있게 먹고 와. 나 먼저 들어간다!”
몇 년 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잘 살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니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픈 한준이었다.
“한준아. 엄마가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운동하면 힘들 텐데. 뱃속 든든하게 채우고 운동해야지.”
“국수가 먹고 싶어요. 멸치국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곳에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가 8평 남짓한 공간이라 더욱 밀착해서 앉게 되었다. 멸치 국수 두 그릇에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좀 더 근사하고 든든한 거 먹지, 국수는 배 금방 꺼지는데.”
“김밥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한준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어머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국수가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서 가끔 혼자 와서 먹고 가고 그랬거든요.”
어머니의 눈물이 국수그릇으로 똑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이곳을 찾아왔을 한준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한준은 이제 경기 전까지 운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경기 끝나면 엄마가 직접 끓여주는 국수 맛보러 가겠다는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어머니를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한준의 귓가에는 후루룩 소리가 맴돌았다.
남자는 언젠가 여행지에서 뿌리가 얽혀있는 괴기한 나무를 떠올렸다. 그 나무는 가여울 정도로 뿌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뿌리를 밟고 다녔다. 그렇게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를 본 뒤로는 가로수 길이나 공원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슬쩍 돌아가거나 슬쩍 흙으로 덮어 주곤 했다.
남자에게 내릴만한 뿌리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족보나 성씨, 가문 등의 이야기는 꽤나 먼 과거의 이야기로 여겼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나 그는 이름은 그저 name. 그러니까 견출지에 붙어있는 식별 가능하기 위해 세워둔 표식 정도로만 여겼다. 이름의 뜻은 물론 성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이름은 송태식이였다. 남들은 그를 송씨 혹은 태식씨라고 불렀고 남자도 그에 별다른 의의가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고아원에서 자랐다. 원장님 말로는 잠시 위탁식으로 맡겨 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고 원장님은 그저 둥지에서 자식들을 떠나보낼 뿐이었다. 원장님이 혹시나 해서 맡겨두실 때 남겨놓은 주소와 부모님의 이름을 알려주셨지만 고아원을 나와서도 그는 부모님을 찾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기술을 배웠다. 홀몸이라고 해도 입에 풀칠은 해야 했기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태식은 열심히 일 한 대가로 집도 장만하고 남들처럼 윤기 좔좔 흐르는 양복도 몇 벌 장만하였다. 태식은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벌면 꼭 그렇게 양복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태식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 즈음에 들어섰기에 주변에서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며 몇 달을 만났고 드디어 여자의 집에 처음으로 인사를 가게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양복을 하나를 꺼내 입고 머리까지 단정히 손질했다. 비록 옆에서 챙겨줄 식구는 없었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반듯하게 자란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남자를 혼란에 빠뜨릴 첫 단추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태식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꽤나 당차고 씩씩하게 첫 인사를 나눈 그는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대면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그라 그는 집 안에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 약간을 이질감을 느꼈으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가보는 집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반갑네. 여기 좀 앉게. 그래. 송태식이라고. 이름이 참 멋있군 그래. 무슨 뜻인가? 아니지 송씨면 여산 송씬가? 아님 은진 송씨? ”
남자의 등줄기에서는 돌연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고 자신도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태식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저 그게. 실은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지금까지 쭉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님. 그래서 이름만 원장님께 들었을 뿐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태식은 조금 풀이 죽었다. 당차던 목소리도 어느새 말끝이 흐려졌고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생각과 말을 내뱉고 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가. 음. 그렇구만. 그럼 그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줄도 모르고? 혹시 원장님이라는 그 분이 그냥 지어주신 게 아닌가?”
그러자 과일을 깎고 계시던 여자의 엄마가 옆구리를 꼭 찔렀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래도 차려주신 저녁밥까지 먹고 나오는 배짱을 보였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 그리고 부모에 대한 물음표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어 보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그냥 아무런 송씨나 댔더라면 그렇게 싸늘한 저녁식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매사에 당당하게 살았으며 고아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가 죽은 적도 없었다. 물론 여자네 부모님의 반응도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아주 잘 열어보지 않던 수첩을 하나 꺼내었다. 거기에는 옛날 고아원을 나올 때 원장님께서 적어주신 부모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주 오래전 주소이기에 이사를 가셨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크게 울렁거렸다.
남자는 그날 이후 다시금 얽힌 뿌리를 훤히 내놓고 있던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시에서 가장 크게 투자를 하고 잘 꾸며 놓았다고 소문난 뿌리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곳에서는 뿌리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에 뿌리공원을 찾은 그는 꽤나 넓은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은 단장이 되어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넓은 공원엔 저마다 어떤 비석이 있었다. 족보박물관 앞에 선 순간 남자는 문득 여자 친구 댁에 인사갔을 때를 떠올렸다. 송태식, 자신의 이름을 되뇌며 말이다.
그리고는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송현식. 남자는 불현 듯 자신도 뿌리를 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았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후회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고 난 다음에야 든다. 내가 그렇고 다른 사람이 그렇듯 언제나 동일하게.
“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어요.”
미용사가 엄마의 머리를 빗으로 다듬으면서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어쩌면 지금껏 엄마를 봐온 나보다 엄마를 처음 본 미용사가 더욱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참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우선 희끗한 저 흰머리 좀 염색해주시고 머리는 가볍게 파마해주세요.”
엄마는 온순한 양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큰 거울이 어색해서 인지 자꾸만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엄마, 고개 좀 들어봐. 그래야 머리가 예쁘게 되고 있는지 알지.”
내 말에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어 거울을 본다. 여전히 어색한 표정은 남아있지만 그런 어색함이 낯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이랑 이렇게 시내 나오시니 좋으시죠?”
“네”
엄마의 단답형 대답에도 미용사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직업병이 아닌가 싶었다.
“점심은 맛있는 거 드셨어요? 따님한테 오늘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세요. 예를 들면 스파게티라던지 경양식도 좋고요.”
“네”
미용사는 친절히 메뉴까지 들어주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무뚝뚝했다. 미용사도 조금은 지쳤는지 머리손질에 신경을 두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엄마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희끗했던 흰머리는 단정한 자연갈색으로 물들었고 헝클어져있던 머리칼은 가벼운 펌으로 탄력이 생겼다.
“이야. 누구 엄마인지 정말 예쁜데?”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엄마도 마음에 드신 듯 웃음을 보이셨다.
엄마는 얼마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다. 암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자궁을 들어낸다는 것에 엄마는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처럼 많이 우울해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고 건강관리만 잘 하시면 일상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한동안 죽만 먹어서 좀 질렸을 텐데. 엄마가 좋아하는~”
순간 엄마가 좋아하는 하고 말문이 막혔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자취집에서 집에 가는 날이면 우리 딸 좋아하는 순두부다 갈비찜이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계셨는데 나는 이렇게 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엄마 손을 잡고 계속 걷기만 하고 있다.
“칼국수 먹자. 칼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네.”
엄마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아챘는지 칼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는 날이면 국수를 말아 드셨던 기억이 났다.
등촌동 칼국수는 뽀얀 국물에 바지락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버섯 매운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얼큰한 국물에 버섯과 미나리 그리고 칼국수 면을 넣어 칼칼하게 먹는 방식이었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다보면 땀이 나면서 몸에 원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음, 국물 시원하다. 엄마 여기 와 본적 있어?”
“응, 저번에 네 아빠랑.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한 게 좋더라고.”
“아빠랑? 언제?”
“엄마 수술하기 전에. 여기에서 답답하던 속 다 풀고 가라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수술 전에 엄마를 모시고 나온 적이 있으셨나보다. 엄마의 갑작스런 수술에 아빠도 적잖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평소 말 한마디 선물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으셨던 아빠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했다는 것에 엄마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국수를 다 건져먹고 갖은 채소와 계란까지 풀어 볶음밥까지 싹 비우고 나서 음식점을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뭐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손이랑 엄마손을 비교해보더니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이걸 뭐라 하더라? 네일아트?” 엄마는 생각도 못한 네일아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엄마. 이제 엄마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사세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엄마와 걸어가는 데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