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더욱 찬란해진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건네는 자와 받는 자들은 거리의 소음을 즐기며 흘러가는 밤을 만끽하곤 한다. 신도시 건설이다 관광지 개발이다 말이 많은 송탄의 밤은 더욱 뜨거웠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띠링, 여동생 진주의 문자다. 언니, 올 때 닭강정 하나만 사다줘. 진주는 현주가 송탄쇼핑타운 근처에 가있을 때면 귀신같이 문자를 보냈다. 언제 한 번 쇼핑 겸 엄마심부름으로 중앙시장에 같이 나왔을 때 닭강정 한 번 맛보더니 때만 되면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
미군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일까 다양한 언어가 섞이며 화장품이면 화장품, 옷가게면 옷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밤이면 먹거리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긴다. 현주는 잠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진주의 부탁대로 닭강정을 파는 작은 핑크색 포장마차로 갔다.
“어머, 또 왔어요? 오늘은 어떻게 줄까?”
“한 박스만 포장해주세요.”
“이거 조금만 먹으면서 기다려요. 금방 해줄게.”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얼굴과 말씨로 시식용 그릇에 닭강정 한 조각을 잘라주었다. 닭강정 하나를 조각내어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왔다.
“우리 딸이 딱 아가씨만 한 나이인데. 매번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네. 우리 딸은 여기도 좋구만 꼭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서 놀더라고.”
“아무래도 서울이 더 볼 게 많고 살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가? 우리 딸이 자주 가는 데가 명동이랑 이태원이라는데 난 여기가 거기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 눈엔 또 다르고 그런가봐.”
“그렇죠 뭐. 사람도 많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딱히 사람이 많은 것 말고는 특별히 그 두 곳보다 더 떨어지는 부분을 찾지 못해서였다. 물론 서울의 동대문이나 명동, 이태원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화려함과 번잡함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을 테지만 어쩐지 나도 아주머니의 딸처럼 송탄관광특구에 대한 자부심은 특별하게 없었다. 그 옛날 관광특구로 선정될 때 크게 열린 행사에 관심을 가진 것 외에는 쇼핑을 위해 혹은 밤거리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적이 없었다.
닭강정 한 박스를 받아들고 좀 걷기로 했다. 낯선 글씨의 간판, 꼭 한번 먹어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미스리 햄버거, 촌스러운 듯하지만 나름대로 개성 있는 옷가게들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이곳이 명동인지 이태원인지 아니면 홍콩의 거리 한복판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선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지나다녔다. 옛날 같았으면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어 옆으로 살짝 비켜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보다 훨씬 이 거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닭강정을 팔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명동이랑 이태원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거기나 여기나 외국인들 많고 예쁜 옷 많이 팔고 먹을 것도 많다고.’
얼마나 걸었는지 중앙시장 끝까지 와버렸다. 띠링, 동생의 문자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그새를 못 참고 또 문자를 보냈나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닭강정은 차갑게 식어있을테고 동생은 투정을 부릴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주 멀리서 사가느라 늦었다고, 언젠가 너도 데리고 와 주겠다고. 지금 바로 간다고.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았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흐트러져 보이나 정돈되어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희미한 눈발이 흩날리다 금방 그칠 것 같더니, 이내 눈망울들이 모이고 모여 굵은 함박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열차는 힘찬 경적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12월 13일이면 평창에는 하얗게 눈꽃이 핀다. 하얀 눈꽃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열차에 탄 사람들 중 유난히 슬픈 표정을 한 여인이 눈에 띈다.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그녀는 한참을 눈꽃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작은 간이역에 내렸다. 사람의 발길이 끊인 지 오래된 간이역이라 평소대로라면 기차기 서지 않지만 12월 13일이면 한 사람을 위해 기차가 멈추어 섰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끝으로 간이역 구석구석을 느꼈다. 그리고는 간이역에 작게 쓰인 시를 응시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의 청년들이 공사현장에 끌려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날 그렇게 눈이 많이 오지만 않았어도 둘은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를 함께 꿈꾸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모인 청년들은 공사현장에 다다르기 전 자그마한 간이역에 머물게 되었다. 청년들로 인해 고요하던 간이역은 금세 북적거렸다. 남자도 다른 청년들과 함께 달걀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흰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남자의 눈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첫눈에 반하게 된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간이역에서 여자를 기다리며 여자를 위한 시를 써내려갔다. 공사현장에서 궂은일을 할 때에도 남자는 여자를 위한 시를 잊지 않았다. 그런 남자의 성실한 마음에 여자도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었고 둘은 간이역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갔다. 남자는 현장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전에 둘만이 아는 장소에 시를 적은 편지를 숨겨놓았다. 그러면 여자는 남자가 탄 열차가 도착하기 전 먼저 간이역에서 남자가 써놓은 시를 읽으며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가던 둘은 남자의 공사가 끝나고 나면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눈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려 바닥에는 금세 눈이 쌓였다. 남자는 그날도 현장에 나갔다. 그날따라 위태로운 난간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그의 주머니 속에는 편지 한 장과 조그마한 반지가 들어있었다. 눈보라가 심하여 작업을 중단하라는 이야기에 난간에서 내려오던 그의 주머니에서 순간 반지가 또르르 떨어졌다. 다행히 반지는 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남자는 손을 뻗어 난간의 끝으로 손을 내밀었다. 눈보라로 시야가 흐려지고 난간을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남자는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시각 간이역에서 여자는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어김없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여자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렸고 마침 열차에서는 남자와 함께 공사현장으로 갔던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사고소식을 들었고 청년은 여자에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와 반지를 전해주었다. 눈이 내리던 그날, 그날이 12월 13일이다.
그녀는 시를 바라보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는 풀썩 주저앉아 한참을 더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발이 점점 가늘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사이로 말갛게 햇볕이 들었다.
그리고 14일, 15일 계속해서 시간은 흐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12월 13일에는 어김없이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알리는 눈이 내릴 것이고 소복이 쌓인 눈꽃은 아름답게 반짝일 것이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완전히 지각이었다. 사장님의 욕설 섞인 호통을 들으며, 고개를 숙여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각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늦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육 개월 전에 캠퍼스에서 봄을 맞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로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외동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고 계셨고, 나도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수도권의 경영학과에 가기 위해 성적을 맞추면서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정답은 당연히 ‘아니오.’였다.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그림을 그리는 데 할애하는 내게는 벌써 수십 권의 드로잉북이 있었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림쟁이에게 대 줄 돈은 한 푼도 없다며 화를 내셨다.
아버지와 크게 싸운 나는 그대로 집을 나왔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뒤, 아르바이트 장소 근처의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스무 살. 나는 아직 어렸고, 앞으로의 생활 문제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잘리지 않기 위해 사장님의 온갖 뒤치다꺼리까지 다 해결하며 사방팔방 뛰어 다녀도 소용이 없었다. 최저 시급도 챙겨 주지 않는 월급으로 밥값과 방값을 해결한 뒤 남는 돈은 오십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무작정 돈을 번다고 해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등록금만 번다고 해서 미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술학원을 다녀도 모자랄 시간에 돈을 벌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불안해지기만 할 뿐, 구체적인 방향이나 해결책이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밖에 되지 않는 휴일,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인근의 공원으로 나섰다. 고시원 주인에게 물어보고 나선 길이라 어떤 곳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길대로 찾아와 보니 알록달록한 조형물이 늘어 서 있는 것이 내 취향은 전혀 아니었다.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나비 공원’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비. 봄에 날개를 펴는 나비. 나는 나비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여린 날개로 나폴 나폴 날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번데기에서 부화하는 나비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따스한 봄볕에 날개를 말리는 나비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도 나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처음 그리기 시작한 그림도 나비였다.
나는 홀린 듯이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나비 장식이 된 전등, 나비 날개가 달린 벤치, 나비 모양의 풍향계와 나비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계절에 나비가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나비생태관이라고 적힌 푯말이 보였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돔형 온실의 모양을 한 나비생태관은 작은 식물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순간, 제비나비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쳐 날아갔다. 자세히 보니 꽃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나비였다. 꽃나무 가지 위에 나비들이 앉아서 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는 것도 잊고 한참동안 나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던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비는 꽃잎처럼 팔랑이며 조금씩 더 높게 날았다. 봄에 보는 나비만큼이나 가을에 보는 나비도 아름다웠다.
나비를 따라 시선을 옮겨가니 온실 천장을 통해 하늘이 보였다. 햇살에 눈이 찡하고 아파왔다. 두 손으로 눈을 감싸 쥐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비는, 언제 날아도 다 같은 나비였다.
흰 눈발이 내리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군고구마 장수와 붕어빵 장수가 눈에 띤다. 집 앞 작은 골목 앞에 있는 따끈한 붕어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골목에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나면 출출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흰 봉지에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가득 담아가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붕어빵 천 원어치에 몇 갭니까?"하고 물으면 "세 개 인데 네 개 드릴게요."하며 따뜻한 마음까지 덤으로 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유난히 이곳 붕어빵을 좋아하셨다. 내가 간혹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거기 붕어빵 장수 오늘은 쉬나? 하며 내심 붕어빵장수의 안부까지 물으시곤 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붕어빵 포장마차의 단골이 된 나는 가끔 붕어빵 장수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붕어빵 장수는 한쪽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빵을 휙휙 돌릴 때면 그 노련함에 박수를 칠 뻔한 적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를 위한 붕어빵을 사가려고 포장마차에 들렀다.
“또 오셨네요.”
“네. 오늘은 날씨가 더 추워진 것 같아요. 오래 서계시면 감기 드시겠어요.”
“저는 불 앞에 있는데요 뭐. 추운 줄도 몰라요. 오늘도 아버지 붕어빵 사드리려고 오셨나봐요?”
“저야 그렇지요 뭐,”
“허허. 그런데 아버님은 붕어빵 질리지도 않으신대요?”
“질리긴요. 언제는 깜빡하고 빈손으로 가면 섭섭해 하신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요기 포장마차 열었나 안 열었나부터 확인한다니까요.”
“아무튼, 매번 참 고마워요. 단골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추우실텐데 이거라도 하나 드시고 계세요.”
“아저씨는 몸도 불편하시고 추우실텐데 어쩜 매년 겨울이면 하루도 안 빼먹고 이렇게 나오세요?”
“춥지요. 추운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집에 혼자 계시는 노인네가 더 추울 것 같아 이렇게 몇 푼이라도 벌어 가는 거지요. 그래야 집에 불도 피우고 생선 한 마리라도 사가지요. 이런 말도 부끄럽지만.”
“부끄럽긴요. 우리 동네 효자가 여기 계셨네.”
“효자라니 당치도 않아요. 그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이지요.”
그렇게 말을 하는 아저씨의 장갑은 많이 낡아있었다. 목장갑은 붕어빵을 돌리는 꼬챙이 때문에 닳아 구멍이 나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보세요.”
“네, 안 그래도 오늘 아버지 생신이라 일찍 들어가려고 했어요. 남은 붕어빵은 아버님께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단골분께 드리는 제 선물이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흰 봉투 가득 붕어빵을 담아주셨다. 아저씨의 한쪽 눈은 찡그러져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갔다.
혼자 계실 아버지를 위해 여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오르고 또 올라갔다.
양손 가득 붕어빵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무슨 붕어빵을 이리 많이 사왔노? 붕어빵 털어 왔나?”
“네. 붕어빵 장수가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래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요.”
“그래? 고맙네. 고마워.”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붕어빵을 머리부터 덥석 드셨다. 품에 품고 와서 그런지 붕어빵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곳에서 복숭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퍽 힘든 일이었다. 도로변에는 복숭아밭이 있고, 봄이면 도화잎이 날렸으며, 여름이면 복숭아 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우리는 폐교 운동장을 빌어 열리는 그 축제에서 맛볼 수 있는 복숭아 막걸리를 사다가 자취방에 쟁여두곤 했다. 복가난한 대학생들이었던 우리에게는 딱 그 만큼이 행복이었다. 복숭아향이나 복숭아 빛깔, 복숭아 맛까지.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복숭아에 빗대어 표현했으며, 특히 나는 복숭아를 닮은 너의 발그레한 두 뺨을 좋아했었다.
휘어진 가지 끝은 종종 울타리를 넘어왔다. 한밤중이면 우리는 술기운을 빌어, 그리고 세상 모든 대학생의 권리라는 패기를 빌어 복숭아 서리를 감행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가 서리한 복숭아들은 항상 시거나 떫었다. 내가 복숭아를 훔치는 이유는 혹시나 주인이 나타날까봐 잘 익은 복숭아처럼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네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너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울타리를 넘어 오게 놔둔 것들은 맛없는 복숭아라니까.”
“아무렴 어때.”
나는 정말로,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너는 금방 토라진 얼굴로 길가에 주저앉으며 맛없는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다리를 까딱이며 맛없고, 조그맣고, 게다가 못생기기까지 한 복숭아를 오래오래, 아주 조금씩 먹어치웠다. 나는 그동안 모난 성격에, 키가 작고, 결코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네 옆모습을 조금씩 훔쳐보고 있었다. 딱 이 부분에서부터 나는 조금씩 혼란스러워진다. 너는 긴 머리를 하고 있던가, 안경을 쓰고 있었던가. 너는 나보다 어렸던가, 아니면 동갑내기였던가. 마침내 네가 복숭아씨를 퉤, 하고 뱉어냈을 때,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던 너의 복사뼈 언저리가 마치 곧 싹이 돋을 것처럼 신비롭게 보였던 것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느 날 너는 갑작스레 사라져버렸다. 사고가 났다고 했던가, 아니면 병에 걸렸다고 했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휴학을 했다고 하던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거짓말처럼 덜 신경질적이며, 키가 더 크고, 더 예쁘장한 아이와 함께 아주 가끔씩 복숭아를 훔쳐 먹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졸업을 맞이한 나는 자연스레 그곳을 떠났다. 몇 년 동안 머무르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기념처럼 가지고 있던 빈 막걸리 병들을 내다 버렸으며,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 가득 담겨있던 것 중에는 분명 너와의 추억이 서린 물건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렴 어때. 짐정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복숭아, 조치원 복숭아요!”
귀갓길에 트럭으로 복숭아를 내다 파는 노점 상인의 고함소리를 듣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무려 2만원 어치의 복숭아를 사 들고 돌아왔으며, 복숭아를 다 먹어치운 주말 즈음에는 조치원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타고 있었다. 복숭아가 생각보다 맛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복숭아씨들을 곧바로 내다버리지 않고 싱크대 한 구석에 모아두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동안 두 번의 연애를 더 했고, 한 번의 이혼을 감행했으며, 첫 번째 이직을 앞두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지쳐 있었고, 다시 말하자면 네가 보고 싶었다. 물론 대학교 캠퍼스에 간다 한들 그곳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저녁 즈음에야 학교 정문 앞에 하차했고, 절반 정도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후배들을 불러내어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셨고, 급기야는 몇 년 새 더 견고해진 울타리의 귀퉁이를 부수고 복숭아밭으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검거되지 않았던 복숭아서리범이 지금 밭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다.
‘알 만한 사람이 도대체 왜!’하는 성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쩌면 그곳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들 중, 너의 복사뼈에서 자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알 만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도 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나는 가끔 사람들의 발목 언저리를 내려다보곤 한다. 혹시나 낡은 슬리퍼 위로 드러났던 너의 바싹 마른 복사뼈, 금방이라도 싹이 돋아오를 것 같은 어리고 단단한, 못생긴 복사뼈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항상, 굽 높은 하이힐 위로 자리한 동그란 뼈들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모두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운 모양이다. 나는 가끔씩 그것이 서럽다.
어린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친정엄마도 아이를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였기에 아이를 봐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서부터 어린이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여기 어린이집인데요. 아이 문제로 상의드릴 일이 좀 있어서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데 나는 급하게 처리하던 일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급하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할 뻔했다.
“네? 잠시만요. 아이 문제라니요?”
“풀잎이가. 말을 잘 안하려고 하네요.”
“아이가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집에서도. 몸이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어머님. 이건 몸이 아픈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일단 오늘 저 좀 뵙고 가세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 한 차례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난 뒤 7시가 넘은 시각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방 한 편에 곤이 자고 있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잠시 제 방으로.”
“네, 오전에는 죄송했어요. 제가 급한 일을 처리할 게 있어서. 원장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했네요.”
“일이 많이 바쁘신 건 알겠지만. 그리고 제가 의사도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풀잎이가 유난히 또래보다 정서발달이나 언어 발달이 늦은 것 같아요. 지금 풀잎이 정도면 한창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고 말도 많이 웅얼거릴 시기인데 혼자 장난감만 쥐었다 폈다 정도니까.”
원장님의 말에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지금 아이는 홀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 그것도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선생님.”
“뭐, 일단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고루 정서를 교감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러기 힘들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지만요. 아니면 자연이나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차선책이긴 하지만 그런 것도 좋고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원장선생님 말씀에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엄마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는 정서가 고루 발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번 주 주말에 하루만 시간을 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우리 세 식구가 모였다. 가족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날씨도 좋았고 북서울꿈의숲에는 역시나 가족단위로 모인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넓고 넓은 잔디밭이 어색한지 자꾸만 한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잔디를 밟아보았다.
“풀잎아. 이게 잔디야. 잔디. 그리고 지금 풀잎이 볼을 스치고 간 건 바람.”
풀잎이도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 발을 콩콩 굴렀다. 한 손에는 아빠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잡은 풀잎이는 모처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 풀잎이 기분 좋아? 풀잎이가 좋으니까 엄마도 기분 좋다.”
“엄마, 아빠, 풀, 바람, 하늘, 구름”
풀잎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다.
남편이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가볍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남편의 뜻밖의 행동에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또 눈물이 핑 돌았다.
“혼자 힘들었을 거 알아. 양육비랍시고 돈 보내주는 것 밖에 못해서 미안해. 오늘 풀잎이 보니까 나도 느끼는 거 많았어. 미안해. 앞으로 자주 시간 보내자.”
남편의 말에 어쩐지 힘이 났다. 그 누구의 말보다 그 누구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친구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또 그런 거 보고 있어?”
“아,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난 이게 제일 재미있더라.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게 한이야, 정말.”
내가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고래 사진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나의 고래 사랑은 쭉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해서 고래의 생태와 습성 같은 것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고래의 사진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쿠아리움에 가면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들도 귀엽지만, 뼈 하나가 사람의 키만큼 큰 고래들이 더 멋지다. 포유류들 중 몸집이 가장 크다는 고래.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날 때면, 저 아래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흰긴수염고래처럼 거대한 고래를 만난다면, 나는 아마 기뻐서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보다 조금 작은 긴수염고래도 좋고, 점박이가 귀여운 범고래도 좋다. 다큐멘터리 채널에 고래가 나올 때마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래나 공룡은 어렸을 때나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고래는 우리 학교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몸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바다 속을 거니는 것이다. 학교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 해 보라! 놀랍지 않은가.
“나 어제 텔레비전 보는데 네가 정말 좋아할만한 곳 나오더라.”
자리에 앉자마자 고래 얘기를 시작하려는 내 말을 지영이가 뚝 끊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고래변태라는 해괴한 별명을 얻은 나는 한 번 고래 얘기를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몰랐다.
“울산에 장생포 고래 박물관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면 4D 영상 체험도 할 수 있고 고래 뼈도 볼 수 있대. 왜, 그 공룡 전시회처럼.”
나는 지영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지영이를 꼭 끌어안고 말았다. 당장 가자며 방방 뛰며 조르자, 참다못한 지영이가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주말에 바로 친구를 끌고 울산까지 왔다.
“정말, 너한테 그런 말을 한 내가 바보지.”
투덜대는 지영이에게는 울산의 명물이라는 치즈 맛 고래 빵 열 개짜리 한 세트를 사 주었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내가 가끔 꾸는 고래 꿈처럼 달달한 맛이 났다.
고래 박물관답게 정원의 조형물들도 모두 고래 모양이어서 여기저기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정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지영이가 고래 모양을 한 매표소 앞의 황동상에서 멈추어 섰다. 황동상은 돌고래와 입을 맞추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소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지영이가 무릎을 탁 쳤다,
“<돌고래의 요정 티코>! 우리 어렸을 때 방영됐던 만화!”
“그런데 만화에 나오는 건 돌고래가 아니라 범고래였어!”
내 말에 지영이가 깔깔 웃었다. 물론 나도 그 만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십 대 중반 줄에 들어서고 있는 또래들 중, 이 만화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만화는 범고래랑 친구인 소녀가 전설의 황금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범고래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어쩌면 내가 고래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 만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결국 고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래가 나오는 영화, 고래가 나오는 소설, 고래가 나오는 만화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끊이지가 않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보았다.
소녀와 함께 헤엄치던 고래는 영화 <그랑 블루>의 포스터 속 달빛 아래에서 뛰어오르는 고래와도 닮았고, 황금고래는 <피노키오>에 나오는 거대한 고래와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꿈꾸는 고래의 모습은, 딱 이 귀여운 고래 빵을 수만 배로 부풀려 놓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사람들은 태어나서 한 번쯤, 고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 좀 떨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줄기차게 보던 얼굴들이기는 하나, 기혼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늦게 하는 결혼이 대세라는데 내 친구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스물다섯 먹던 해부터 줄기차게 시집을 갔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이렇게. 다들 아홉수를 피하려고 작정을 한 건지 마의 스물아홉 이전에 전부 유부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 나 혼자 독신녀로 남아 저 독한 유부녀들을 상대했다. 친구들은 남편 얘기, 아이 얘기, 아니면 또 다른 애인 얘기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뭐 일거리 말고는 할 만한 얘기도 없었다. 남자아이돌들을 좋아하긴 하나, 친구 녀석들한테 얘기해봤다 정신 못 차렸다며 잔소리나 들을 테고. 그래서 친구들이 수다 떨 동안 조용히 쭈그린 채로 음식에 심취하거나,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아, 가끔 야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서른다섯 겨울, 드디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상대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회사원. 평소 핥던 아이돌처럼 얼굴이 잘나지도, 몸매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말이 통하고 편안해서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동준씨, 기력은 좀 있어?”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 녀석들은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만 봤다. 그 중 미경이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아니, 너네 애기도 낳을 거라면서 신랑 기운이 좋아야 2세를 낳지.”
순간 얼굴이 좀 붉어졌지만, 미경이 말이 맞다 싶었다. 우린 만나기만하면 서로 죽겠다며 피로를 토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젖힌 채 잠들기 일쑤였다. 이래가지고 어디 자식 보겠나 싶어 걱정이 됐다. 그때 혜진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음 주에 광양에 어른 물 받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어른물이라니, 물중에 어린 물도 있고 늙은 물도 있나?”
“야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지. 광양에 고로쇠물이 유명하다잖아. 미경이 남편이랑 우리 남편이 요즘 영 골골거리고 지루해서 우리 다음 주에 물 받으러 갈 거야. 고로쇠물이 기력 회복에도 좋고 비뇨기 계통에도 아주 좋다더라고. 너도 갈래?”
결혼준비도 중요하지만, 결혼 후의 생활을 생각하니 갑갑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이나 나나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신혼도 즐기고 아이도 가지려면 역시 몸관리가 필수지! 가구랑 전자제품 들어오는 날짜를 어찌저찌 계산하다보니, 결혼 일주일 전 딱 반나절 정도 시간이 비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로 광양으로 향했다.
약수통 하나 들고 룰루랄라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왜 난 백운산 중턱을 오르고 있는가! 왜 아무도 나에게 산으로 올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먹으러 사람들이 이런 산중까지 올라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평지와 함께 고로쇠나무들이 등장했다. 나무마다 하얀색 물통이 꽂혀 있었고, 나무에 꽂혀 있는 호스를 통해 고로쇠 물이 한 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맑은 물인데 이거 한 말에 오만 원씩이나 한단말야? 아깝다. 이 돈이면 족발을 아주 그냥 원 없이 먹을 수 있는데.”
“아서라, 너는 그게 예비 신부가 할 말이냐? 이리 와서 어른 물 한 잔 마셔봐. 고로쇠 물로 끓인 백숙도 죽여줘.”
혜진이의 닦달에 고로쇠 물 한 모금 먹고, 백숙 한 점 뜯었다. 신기하게도 물이 달았다.
“야, 어른 물 생각보다 달고 맛난다. 어른은 쓴물만 먹고 살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물 먹어도 되는 거야? 어른 좋네.”
그 후로도 나는 한참동안 닭 한 점 뜯고 고로쇠 물 마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처음에는 한두 잔만 주고, 동준씨 갖다 줄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약수통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동준씨만 기력 차리란 법 있나? 애는 내가 낳는 데 내 몸부터 챙겨야지. 고로쇠 물에 푹 빠져 입맛을 다시는 날 보고 미경이가 말했다.
“지금 많이 마셔 둬. 너 이제 시집가고 나면 쓴 물 배터지게 먹을 테니까.”
나는 약수통 바닥에 남은 고로쇠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잔에 부었다. 그리고 잔 바닥까지 핥아 마셨다. 캬, 어른 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