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기억마저 품어내다
- 경상북도 포항시 -
포항시 남구에 자리한 구룡포는 일제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누구나 이곳에 가면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을 점령한 침탈 현장을 쉽게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국권을 빼앗긴 암울한 기억 앞에서 이윽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수 있는 유능함으로 역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 동해 앞바다에 숨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은 ‘황금어장에서 행복과 슬픔을 느껴라!’
기묘한 현무암이 늘어선 구룡포해변은 동해바다를 향해 뻗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노력이 채 끝맺지 못해 바닷가에 머무른 모습이 애처롭다.
“구룡포의 이름은 아홉용이라는 뜻이야. 이곳에서 승천한 아홉용과 오르지 못한 한 마리 용의 이야기는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들이 용이라 말했던 그것은, 혹시 이곳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그들의 모습이 비친 바닷가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일본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인 냥, 구룡포의 한 골목에는 일본식가옥이 길게 늘어져있다. 조용한 우리나라의 어촌마을에 왜 이런 건물들이 세워졌을까?
“일본인 가옥거리가 있는 이곳은 근대 문화 역사 거리라고 해.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어업을 하기 위해 방파제를 쌓아 만든 곳이래.”
“풍부한 어장 때문일까? 일본인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힘들었던 역사의 기록이 이렇게나 길고 긴 거리로 남아있다니, 조금 슬퍼.”
골목을 지나다 보면 옛날 여관으로 사용되었다는 건물 내부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오래된 이 건물에는 조금 콤콤한 냄새와 함께 또 한 번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일본식의 가옥을 일본인이 직접 지은 것이라 그런지, 한국적인 정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집 구조를 하고 있어.”
“맞아. 아무리 따라하려해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지. 우리에게 남은 침략의 역사와 아픔을 잊지 않도록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지?”
서민들이 살았을 법한 일본식 가옥들이 즐비해 있지만, 이곳은 무언가 남다르다. 2층으로 지어진 이 화려한 목조건물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마네킹을 이용해 일본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 꼭 박물관처럼 꾸며놓았어. 실제로는 개인의 가옥이었다니 믿겨지지가 않아.”
“일본식 화장실의 모습이 정말 특이해.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화장실과는 전혀 다르게 나무로 만들어져있는 화장실이, 역사를 그대로 보존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일본인가옥 거리의 중심에는 구룡포공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에 서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해바다에 한동안 매료되겠지만 얼마 못가 일제 침탈의 흔적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이곳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되고 마을 처녀들은 정신대 끌려가고…. 이 공원 둔치에서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울부짖었을 거야. 구 충혼탑 기단 신사터 초석이야. 일본인이 세운 신사와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가 있던 곳이 여기라지?”
“맞아. 일본사람들이 다 떠나간 그해 가을, ‘왜색일소’를 외치며 여기에 시멘트를 부었어.”
일제강점기의 기구한 역사는 사실 구룡포의 작은 단면일 뿐이라고 했던가. 구룡포를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구룡포를 조금 달리 바라볼 수도 있겠어. 선사시대 유적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 물길에 숨어 있으니까.”
“구룡포해수욕장과 그 인근의 주상절리, 대보면과 구룡포읍 경계에 위치한 고인돌, 등대박물관까지, 가만 생각해보니 이곳만 돌아보고 그냥 돌아가면 안 되겠다 싶어!”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해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말봉재 정자에 올라서면 우리 땅 동쪽의 눈부신 어항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저기 저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와 머구리, 과거의 어두운 흔적은 금세 잊어버릴 법한 풍경이야.”
“하루 세 번 어판장이 열리는 구룡포항의 모습도 그래. 너울대는 동쪽 바다의 매력을 한없이 부풀리고 있지. 긍지의 항구, 긍지의 사람들, 시간이 지나도 잃지 않는 빛과 같아.”
화려한 구룡포항, 그러나 이 아름다운 항만 역시도 ‘축항’이라는 침탈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맞아. 1920년대 일제가 구룡포 앞바다에 축항을 한 거야. 일본인이 대량 어획을 하는 큰 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기 어업은 일본인이 다 장악했지. 참 씻어내기 아픈 역사야.”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자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긍지와 아픔을 그들은 알까?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침탈의 역사에 대한 뉘우침과 교훈’으로 남길 바랄 뿐이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구룡포. 지금도 대게, 고래, 과메기, 오징어 할 것 없이 어마어마한 어장을 품고 있는 이 포항의 대표 어항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구룡포를 조금만 더 가까이 서서 들여다보면 즐비한 일본식 가옥과 신사터 등을 만나 우리네 아픈 기억을 반추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비옥한 구룡포 앞바다의 물숨이 일제강점기 기구한 역사의 시작이라니. 믿기시나요? 우리 민족 역사의 아픔을 되짚어가는 조금 특별한 포항 여행, 여러분 가슴에는 어떻게 다가올까요?
이야기가 잠든 곳
- 경기도 수원시 -
‘사방으로 통해 있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라 하여 태조 이성계가 이름을 지은 이 산에는 수원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우리나라의 성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성들 중 하나로, 그 보존 가치 또한 매우 높습니다. 화성에는 장헌세자와 정조의 애틋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학적 비밀 또한 숨겨져 있으니 이것들을 찾아내신다면 수원 화성을 몇 배나 더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화성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내라!’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입니다.
화성에 대한 흥미를 북돋워 주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장헌세자 이야기 알기. 장헌세자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이름이라면 이야기가 다른데?
“화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융릉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이란다. 이 무덤 때문에 만들어진 도시가 수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장헌세자가 대체 누구죠? 왕의 아버지인데 세자라는 호칭을 쓰지 조금 낯선걸요?” “그럴 줄 알았어. 영조가 뒤주 안에 자신의 둘째 아들을 가두어 굶어 죽인 이야기는 알지?”
정조는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젊은 아버지가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그의 효심은 남달랐다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는 것을 봐야 했다니, 충격이 참 컸을 것 같아요.”
“융릉 근처에는 정조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인 용주사도 있단다. 정조는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나 거동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해. 사도세자와 정조에 얽힌 설화들이 아주 많은데, 이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구나.”
화성의 성벽은 4m 정도로, 다른 성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성벽들은 모두 아주 높은 것들인데, 요새 역할을 하는 화성의 성벽은 왜 낮을까?
“생각해보니 이상해요. 성벽이 이렇게 낮은데, 적군으로부터 성을 방어할 수 있었을까요?”
“네가 보았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전쟁들은 보통 아주 옛날의 전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란다. 이 시대의 전쟁은 이미 성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화포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형태였기 때문에 성벽을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에는 화서문, 장안문, 창룡문, 팔달문 등 사대문을 포함, 총 48개나 되는 시설물이 있다. 화성은 아주 빨리 지어진 건물이기도 하다는데?
“우와,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성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정말 웅장한데요? 이 성이 다른 성들보다 더 빨리 지어졌다니,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학자 정약용이 화성을 지을 때 총 11대의 거중기를 사용했다고 한단다. 작업 능률이 다섯 배나 높아졌기 때문에 화성은 매우 빨리 지어진 건물이기도 해.”
지금의 화성은 일제의 침략과 6.25 전쟁을 겪으며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배운 적이 있어요. 문화재를 복원했을 때에는 원래의 재료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화성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된 거죠?”
“비밀의 열쇠는 정약용이란다. 정약용은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화성 축조 당시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단다. 때문에 화성의 벽돌 색 하나까지 그대로 복원되었지.”
네모반듯한 성곽의 돌들 가운데 툭 튀어나온 돌이 있다. 눈썹 모양의 돌이라 하여 미석(眉石)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돌을 알아볼 수 있을까?
“성벽이 전체적으로 평평한데, 저 돌들만 튀어나와 있어요. 저게 바로 미석인가요?”
“잘 알아보았구나. 저 돌은 우산 같은 역할을 해. 정약용은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뒤 이것이 얼었을 때, 부피의 차이 때문에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거지. 미석 덕분에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지 않고 땅으로 바로 떨어지게 된단다.”
성의 일부를 가져다 만든 것 같은 모양의 수원 화성 박물관, 이곳에서는 화성의 모든 비밀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내부 계단의 모양도 화성 공심돈을 본 딴 것이니 올라볼 것.
“군사들이 성 안에서 어떻게 적을 공격하는지 궁금했는데 모형이 마련 돼 있네요? 아까 말씀하신 거중기로 성을 쌓는 모습도 있고요! 남아 있던 궁금증이 싹 풀리는 것 같아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장면도 재현되어 있고, 정조가 화성 행차 때 입었던 황금 갑옷도 볼 수 있지. 화성의 과학은 물론, 정조의 가족 사랑도 느껴볼 수 있단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수원팔경 중 한 곳인 이 방화수류정 근처에 화성의 마지막 비밀이 있다는데, 찾을 수 있을까?
“화성의 마지막 비밀은 바로 비밀통로란다. 구석진 곳에 비밀 문을 설치해서 적들 몰래 가축이나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지."
"그래서 이 비밀통로를 통하면 방화수류정에서 물의 시작점인 용연까지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단다. 이 비밀문의 위치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이야기가 있어 특별한 수원 화성. <트래블아이>와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수원 화성 박물관에서는 혜경궁 홍씨와 정조대왕의 옷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으니, 마치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생생함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적인 축성 방식에서부터 정조의 효의 정신과 애민정신까지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수원 화성. 이번 휴일에는 수원 화성에 가서 역사와 사랑을 동시에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곰탕의 품격
- 전라남도 나주시 -
영산강이 흐르는 이 도시는, 남쪽의 서울이라 할 만큼 번성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리적인 여건도, 인재도 풍부했던 이 도시는 바로 전라남도 나주입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이곳은 물론 먹거리도 번성했는데요, 특색 있는 음식이 많이 발달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전라도 특유의 먹거리인 홍어를 비롯해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잡히는 구천포 장어까지! 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운 음식이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풍요로운 서민의 맛을 느껴라!’입니다.
늘 쉽게 보던 하얀 국물이 아니다. 투명한 듯, 신비로운 색을 가진 국물과 그릇 가득 들어찬 고기. 이것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이제 바로 ‘나주곰탕’이야. 간단한 반찬과 밥, 국이 전부인 밥상이지만, 이 소박한 상에는 사실 품격이 담겨있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주곰탕거리에 있는 식당 곳곳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나주곰탕의 명성을 알 것 같아!”
전라남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서민들에게 자리 잡은 육류문화가 바로 ‘나주 곰탕’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나주 곰탕은 어떤 의미일까?
“국물 맛이 베어서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걸?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고기를 넣어 만든 음식이 서민의 음식이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아?”
“그런 나주에서 20여 년 전, 나주의 5일장에서 팔기 시작한 이 나주곰탕은 점점 그 기세를 키워 이제는 나주의 대표음식이 된 것이지!”
옛날의 나주 곰탕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소를 잡고 나온 내장과 고기로 육수를 내었던 국밥을 팔았던 것이라고 하는데?
“곰국은 원래 양반가의 음식 아닌가? 고기가 귀했던 옛날에 이렇게 좋은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어떻게 서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을까?”
“예로부터 주변의 곡창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을 만큼 비옥한 곳이었어. 그러다보니 소사 흔하고, 고을 아치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바로 곰탕이었다고 해.”
나주 곰탕은 좋은 고 기인 사태와 양지머리 살을 통째로 넣고 마늘, 양파 등을 함께 넣어 오래도록 끓인 육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또 다른 맛의 비밀이 있다는데?
“약간의 기름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떠 있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국물 맛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저 고기와 야채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고기가 더 놀라워! 익힌 소고기는 질기기 마련인데, 결을 따라 얇게 찢거나 썰려 나온 고기의 식감이 부드럽기까지 하니. 나주 곰탕은 정말 독특해!”
너무 짜지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짭짤한 맛의 국물 맛! 나주 곰탕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조금 특별하다.
“나주 곰탕에 사용하는 소금은 3년을 묵혀 간수가 모두 빠진 것이라고 해. 귀찮은 과정이지만 그 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이지.”
“아무리 많은 양을 끓이고,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도 변하지 않는 맛의 비결을 끝없는 노력과 반듯한 의지 때문이구나! 또 다시 오더라도 변하지 않은 맛을 느낄 수 있겠지?”
서민의 음식이라서 그럴까? 나주 곰탕 거리 어딜 가나, 나주 곰탕과 함께 오르는 찬은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이다.
“왜 나주 곰탕과 함께 올라오는 찬은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일까? 더 많은 찬이 나오는 전라도의 한식과 비교되는 것 같아.”
“하지만, 나주 곰탕 자체가 가진 영양과 풍부한 맛 때문에 다른 찬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어. 국물에 만 밥과, 고기, 국물을 한 수저에 떠 깍두기와 먹으면, 정말 최고의 맛이지!”
그저 고소한 맛이 나는 독특한 국물. 고기가 가득하고 야채라고는 김치뿐인 이 밥상. 부족해 보이지만, 이 건강한 맛은 대체 어디에서 느껴지는 것이지?
“나주 곰탕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정말 좋다고 해! 양질이 지방과 단백질, 게다가 함께 우리는 쇠뼈의 칼슘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해!”
“뿐만 아니라, 야채로 함께 국물을 내고, 또 조미료가 일체 첨가되지 않은 이 나주국밥은, 어른들의 건강에도 더 없이 좋은 음식이야!”
이 나주 곰탕 골목의 한 식당에서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음식이라는 말도 있다. 과연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것일까?
“나주국밥의 유래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0년 전, 서민들을 위해 장터에 나왔던 그 맛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아.”
“맞아. 나구 곰탕의 이 유명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아. 이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나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남도음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나주에는 아직도 수많은 음식들이 유명세와 함께 이어져오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주의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나주곰탕은 입소문을 타더니 점차 유명해서 방송에 까지 출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맛과 변함없는 정성은 나주 곰탕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뽀얀 국물과 야들야들 삶아진 고기 한 점에 밥 한 술 떠보시지 않겠어요? 나주 곰탕의 진가는 여러분이 직접 찾기 전에 알 수 없을테니까요!
남도의 맛에 바다를 더하다
- 전라남도 순천시 -
겨울이면 바다에서 나는 많은 것들의 맛이 진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수온이 낮아지면서 살이 단단해지다 보니 그 안에 스며 있는 맛 역시 농축되기 때문이지만, 찬바람을 맞으며 얼얼해진 사람들의 감각을 깨우기 위한 자연의 섭리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꼬막 산지인 여자만을 끼고 있는 순천에서는 남도식 꼬막정식을 한상 푸짐하게 받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순천만에서 잡힌 짱뚱어탕 한 그릇을 고들빼기와 곁들이면 칼바람도 끄덕없습니다. 남도의 바다향기를 제대로 음미하고 싶다면 당장 순천만으로 식도락여행을 떠나라!
바다와 강, 산 모든 것이 만나는 축복의 땅 순천. 그곳에 모인 비옥한 영양들이 모두 모여 있는 별미가 궁금하다!
“순천은 정말 풍요로운 곳인 것 같아. 끝없이 펼쳐진 논만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야.”
“맞아. 밥 한 끼를 든든히 먹으면서 맛도, 건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론 순천의 맛을 느낄 수 있어야겠지!”
탕, 전골로 즐길 수 있다는 이것! 생선의 비린 맛은 찾아볼 수 없고, 말끔한 국물에 뜬 방아잎의 향기가 먼저 다가온다.
“추어탕과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방아잎과 들깨 가루가 들어간 것이 정말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예요.”
“맞아. 하지만 추어탕처럼 생선을 갈아낸 것은 아니고, 깊게 고아낸 짱뚱어를 이용한 이 곳의 별미란다.”
짱뚱어 요리는 순천에서만 맛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잡히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짱뚱어 요리를 맛본다면 순천 짱뚱어의 깊은 맛이 그리워 질 것이다.
“순천 짱뚱어 만의 특별함이 있을까요?”
“순천의 비옥한 땅 덕분인지, 잘 보존된 갯벌 덕분인지 몰라도 매번 여름이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짱뚱어가 갯벌 이곳저곳을 귀엽게 통통이며 뛰어다닌단다. 다른 지역의 짱뚱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을 낼 수 있는 비밀 하나가 있다고 하는구나!”
순천을 찾아 맛보게 되는 짱뚱어 요리는 특별하다. 추어탕과 생긴 것도, 먹는 모습도 비슷하지만 금방 이 맛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순천을 찾은 여행객들이 빠트리지 않고 이 짱뚱어탕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맛 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이렇게 맛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맛과 독특함도 한 몫 하겠지만, 건강함이 끝없이 몰려와요! 짱뚱어는 기름의 여독을 빼주는 건강식이기도 하니까요.”
누런 된장을 풀어 넣어 구수해 보이는 색을 하고 있는 짱뚱어 탕은 그 담백한 맛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특별할 것 없는 국물의 뒤끝이 좋다.
“짱뚱어가 들어갔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탕에 들어있는 토란, 고사리, 팽이버섯 등의 신선함이 그 풍미를 더하는 것은 분명하겠죠?”
“맞아. 게다가 짱뚱어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푹 고아낸 것에 된장으로 비린내를 잡아주었기 때문에 부담감 없이 건강한 맛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란다.”
쫄깃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꼬막의 맛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거리다.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식감이 ‘이 맛이다!’ 하며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는데?
“양념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하고 있어요.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이 맛을 어디에 비할까요.”
“콩나물이 그러하듯 꼬막도 잔칫집의 흔하고도 소중한 반찬이었지. 그래도 제대로 꼬막 맛을 갖추려면 고추장을 주로 한 갖은 양념 무침도 맛봐야지.”
서을 인근에서는 흔치 않은 토하젓, 밤젓,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등이 한상 가득 올라오는 남도 한정식이면 바다 가까운 순천땅 산해진미를 모두 맛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고들빼기는 달큰한 맛이 배추김치나 총각김치 맛과 전혀 달라요.”
“맞아. 인삼을 씹는 것처럼 쌉싸래한 게 밥맛을 돋워줄 거야.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우리는 저장된 음식을 먹게 되는데, 제철 식물이 나지 않는 겨울에도 풍성한 영양분을 듬뿍 담은 재료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순천은 잘 알고 있는 듯해.”
초가지붕과 돌담,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고 추억이 금세 현실이 되는 낙안읍성. 이곳 민속마을에서는 매년 맛과 멋이 있는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린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모두 순천에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남도음식문화큰잔치와 순천만 갈대축제가 있죠.”
“정확해! 특히 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가면 다도체험, 소달구지 체험, 고들빼기 담그기 체험, 남도의 절편 만들기 체험 등 남도음식을 전부 만나볼 수 있지.”
온전한 뻘의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돼 있는 순천만은 물이 빠져나간 자리d[ 갯벌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바다 생명들이 먹이활동에 여념 없습니다. 이 일대에서 만나는 음식 역시도 자연을 담아서인지 남도음식 맛으로 손에 꼽으라면 순천은 빠지지 않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각나는 짱뚱어탕과 꼬막정식, 거기에 별다른 조미료 없이도 맛깔스러운 고들빼기김치 등 푸짐한 남도 한정식을 떠올려보면 당일치기로는 아쉬운 것이 바로 순천 여행입니다. 이번 기회에 산해진미 머금은 자연의 맛을 만나러 순천으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모악산이 꾸는 꿈
- 전라북도 완주군 -
전라북도 완주 구이면에 자리한 모악산 자락은 온유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산 뒷자락 숲길을 지나는 순례길은 실로 아늑하고, 봉우리에서 바다를 향하는 모습 그윽합니다. 모악산 골짜기에 자리한 수생금 물은 금을 낳고 생명을 키우는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천수만 년 동안 모악산과 함께해온 완주 전역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 산 역시 피해갈 수 없었던 아픔을 간직한 이 산을 알고자 한다면 그 이름의 유래를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 ‘모악산의 유래를 찾아라!’
실로 모악산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산으로 평가된다. 그 지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저기 보이는 저 모악산, 어미가 아이를 안은 듯 인자해보여. 그래서 모악(母岳)산일까?”
“그럴 수도 있지. 모르긴 몰라도, 과거에 사람들은 저 산을 악이 없다고 무악(無惡)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게 모태가 됐을 수도.” “직접 이 산을 둘러보다 보면 왠지 그 이름의 유래도 보일 것 같아.”
모악산은 지리적 의미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에서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동학농민혁명삼례봉기역사광장에서 그에 대한 많은 도움을 얻을 것 같다.
“정여립이 대동단을 만든 곳도 바로 여기라지. 동학혁명 때 동학교도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세를 바로 이곳에서 폈으니까.”
“맞아. 그뿐만 아니라 한 땐 이곳에 수많은 종교집단들이 자리 잡고 교세를 펴 충남 계룡산과 함께 한국 2대 명산으로서 꼽혔지.”
요즘도 이 일대의 신흥종교 단체들이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다는 금산사. 그들에게 모악산은 ‘우주의 자궁과’도 같은 존재일까?
“모악산 일대는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증산교가 시작된 곳인 만큼 신흥종교의 발생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겠지?”
“맞아. 기운이 센 탓에 계룡산과 함께 무속신앙의 근거지로 꼽히게 됐다지. 실제 이 일대는 예부터 증산도의 발생지로도 유명하잖아.”
모악산 순례길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문화유산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종교 성지들이 인접해 있어 이웃 종교를 존중하는 법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원불교·불교·기독교·천주교 등 여러 종교가 힘을 합쳐 선포한 240㎞에 이르는 이 순례길을 일러주는 이정표는 달팽이 그림이지. ‘느바기’가 모토라는데, 그 뜻을 알고 있니?”
“달팽이처럼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걸어라, 대충 그런 의미 아닐까? 앗! 금산사를 출발한 지 30분도 채 안 됐는데 100년 넘은 예배당이 떡하니 있구나.
오래된 나무 십자가가 예배당임을 알린다. 이 순례길에서 만난 예배당은 개신교 전도의 전초기지인 금산교회다.
“이곳은 개신교, 가톨릭 신자가 절이나 원불교 교당에서 자고, 불교 신자가 성당에서 자는 일은 정말 쉽다더라.”
“종교의 경계를 초월하게 된 계기는 뭘까?”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계급을 초월해 섬김의 정신을 실천했던 두 남자 이야기를 들어봐.”
예배당에서 다시 걸음을 옮기면 금평저수지를 만난다. 이 옆에 화려한 빛깔의 증산법종교 본부는 물론 미륵불의 소망이 담긴 오리터도 볼 수 있다.
“개신교 전도의 상징을 담은 예배당에 증산사상의 발원지와 미륵불의 모태를 모주 마주한 셈이자나! 이런 장소는 어디에서도 쉽게 만나기 힘들 거야.”
“먼 옛날, 위험천만하게 평등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이 지역에는 유독 많았다는데,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정여립의 집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농민운동의 녹두장군 정봉준의 최후전적지까지 만나게 되면 종교와 계파를 초월할 수 있던 이 지역의 내력과 모악산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은 곳이 정봉준의 집이었어.” “그런 점에서 인내천과 정봉준, 모악산은 꽤 닮아 있는 것 같지?”
“중요한 말을 했구나.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계곡이 깊어 숨기 좋았던 모악산은 인근이 평야라 먹을 것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거야.”
논밭, 갈대숲을 지나 시골마을의 소소한 일상과 마주하게 되면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는 모악산의 참뜻이 응집된 길이기에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다시 ‘사람 사는 동네’지만, 너에게 뭔가 또 다른 깨달음이 됐을 듯한데?”
“동네 슈퍼, 시골 문방구,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 같이 소소한 풍경을 그냥 지나칠 뻔했지만, 모악산이 품은 뜻을 알 것도 같아. 그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모악산을 닮은 이 길은 결국 ‘사람 사는 길’에서 끝이 난다는 거야.”
악이 없기에 무악(無惡)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인자한 산, 누구라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닌 모악산을 깊이 탐구하다 보면 결국 숨은 유래도 찾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순례길을 밟아가다 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모악산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구간구간 서로 떨어져 풍경만 고고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길이고, 그 사람 사는 이 길을 모악산이 품어내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됐나요?
새벽이 밝아오는 곳
- 울산광역시 울주군 -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은, 동해 끝에 자리한 독도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육지의 새벽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바로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간절곶'이 바로 그 곳입니다. 정동진보다도 5분이나 일찍 새해 첫 해가 떠오르는 이곳은, 최근 일출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너무도 유명한 일출명소들을 제치고, 간절곶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간절한 소망을 빌고, 소망에 대한 보답을 받아 돌아와라!'입니다.
한반도의 육지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울산 간절곶. 새천년 밀레니엄 해돋이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고 있을까?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을 비롯한 자연경관으로 여름이면 울산에서 가장 인파가 많은 곳이 바로 이 근처에 있다고 해.”
“하지만 여름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쏟아지는 1월 1일 새벽은 어느 때 보다도 붐비는 날이지.”
한옥이 우뚝 올라선 듯이 한옥식의 동기와를 올려놓은 지붕이 어쩐지 친근하다. 본체와 지붕에 진 각도에서까지 조형미가 느껴지는 등대가 서있다.
“바다 내음을 따라서 해안도로를 달리다 마주친 간절곶 등대의 풍경이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져. 얼른 저 안으로 들어가보자!”
“간절곶 등대는 1920년에 처음 지어 졌다고 해.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등대는 약 10년 전에 새로 지어진 것이래.”
하얀 간절곶 등대에 다가서자 눈이 더 부셔온다. 그만큼이나 아름답게 만들어진 나선형 계단을 오르자, 성에 갇힌 공주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와, 등대에 있는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탁 트인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있어! 이곳에서 일출이 뜨는 것을 보면 정말 황홀할 것 같아!”
“등대 아래로 펼쳐진 솔숲의 꼬불꼬불한 전경이 인상적이야. 일부러 가꾸어 놓지 않은 듯 한 자연스러움이 정겹게 느껴져.”
간절곶에는 곳곳의 조각상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찾아온 사람들이 늘 그들과 함께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 속에서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이 모녀상에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해. 어머니와 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니?”
“잘은 모르겠지만, 애절하게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머니와 딸 모두에게서 슬픔과 기다림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
간절곶에는 이미 TV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커다란 소망우체통이 있다. 이 우체통에 살짝이 소망을 적어 넣어본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넘는 소망 우체통이 있어! 멀리 있는 등대보다 더 눈에 띨 만큼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져 있네.”
“꼭 그 색이 크리스마스를 연상하게 해. 이곳에서 소망과 추억을 담아 쓴 편지가 도착하면,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보다도 설레지 않을까?”
고운 모래가 넓은 해안을 따라 펼쳐져있다. 그 위로 찰랑이는 물빛이 이렇게 맑을 수가 없다. 간절곶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간절곶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진하해수욕장이야. 이 해수욕장은 국가가 선정한 우수 해수욕장 20곳 중의 하나라고 하니, 사람들의 발길이 더 끊이지 않는 것 같아.”
“꼭 새해나 기념이 될 만한 날이 아니라도, 이곳에 찾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간절곶의 아름다운 일출을 볼 기회가 늘어나고 있겠어!”
빛의 시작과 소망 성취의 기원지라고 불리는 간절곶. 태양을 향해 달려나가듯 뻗어 있는 지형을 따라 소망을 빌어본다.
“해가 뜬다! 와, 일찍 뜬다고 해서만 유명한 것은 아닌가봐. 수평선 넘어 떠오르는 태양이 간절곶의 지형과 잘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잖아!”
“수평선만 길제 펼쳐져 있어도 아름다운 일출이, 이 곳 간절곶에서는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아. 아무래도 소망을 가득 담아 떠오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국 청도 공사에는 1년 중 딱 하루만 운행하는 특별열차가 있다고 한다. 그 특별열차는 과연 어떤 열차일까?
“해맞이 관광열차라고 들어봤어? 새해 첫 날에만 운영하는 특별열차인데, 서울에서 출발해 이곳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코스로 제공된다고 해.”
“그렇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절실히 바라다’라는 뜻의 ‘간절’이라는 단어와 상통하는 이곳에서 소망을 빌기에 더 없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간절곶에는 독특한 상징물이 있습니다. 조형물인 이것은 매년 띠를 나타내는 십이간지를 표현해 복을 주는 상징적인 행사로 만들어지게 된답니다. 2013년은 계사년을 맞아 지혜와 재물의 상징인 뱀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니, 내년에는 어떤 조형물이 세워지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간절곶에 어떤 소망을 빌고 돌아오실 건가요? 해맞이를 위해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이곳에 들린 여러분은 한반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에 순수한 소망을 가장 먼저 얹혀 올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은은함과 화려함의 공존
- 대구광역시 달서구 -
도심 속에 가득 피어난 꽃과 푸르게 자라는 나무들. 조경 수목이 빼곡히 자리해 사계절 내내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두류공원입니다. 인접한 곳에 위치한 이곡동 와룡공원에서는 개구쟁이들이 더위를 참다 못해 바닥 분수에 뛰어들어 물장난을 치고, 상인동 월곡역사공원에서 월곡역사박물관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거닙니다. 로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만큼의 화려함을 갖춘 달서구 공원으로에서 색다른 추억 쌓기 어떠세요? 그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와룡산 자락에 위치한 와룡공원 역시 소나무 외 23종 수목과 다양한 편익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 명물은 따로 있다는데?
“사실 와룡공원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도로 아래쪽, 다른 하나가 바로 여기야. 야간에는 특히 황홀한 조명과 함께 펼쳐지는 분수를 보려고 많이 찾는 곳이 여기지.” “그 분수를 보려면 이 화강석 도로를 따라가면 나오겠구나.”
“이 바닥도 자세히 봐봐 비둘기, 장미 은행나무 등등이 새겨져 있지? 뭘 뜻하는지 알겠니?”
와룡산은야산으로 산세가 마치 용 한 마리가 누워있는 듯해서 와룡산이라 불린다. 그런 만큼 이 산에는 아주 태고적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는데?
“산체의 중앙부에 화강암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실제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네.”
“전설에 의하면 이 산 아래 용이 노닐다가 못에서 나와 승천하려는데 지나가던 아녀자가 이를 보고 "산이 움직인다"면서 놀라 소리쳤대. 그때 용이 놀라 승천을 못하고 떨어져 누운산이 바로 이 와룡산이라고.“
월곡역사공원은 인근 단양우씨종중 제실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념비 등과 연계하여 역사 교육장 및 특색 있는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단양우씨의 세거지이던 월촌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해놓았네. 향토의 역사가 절로 느껴져. 특히 이 대나무산책로가 공원을 더욱 아늑하게 해.”
“맞아. 이곳은 대나무와 소나무가 공원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월촌마을을 충의지향으로 일컬어왔다는데, 이 수종들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니?”
전통문화유산과 대나무산책로 등의 공원시설이 한데 어우러져 지역주민의 휴식 및 운동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이 공원 옆에는 월곡역사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무엇을 전시해놓은 공간일까?”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운 월곡(月谷) 우배선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지. 그만큼 옛 농기구와 생활용품, 보물 제1334호인 화원우배선의병 진군공책, 서간문, 고서적 등을 전시해두고 있어. 이중 가장 볼만한 거리가 뭔지 알고 있니?”
사람들이 가득한 두류공원의 꽃길.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꽃들에 사람들의 표정이 덩달아 밝아지는 이곳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꽃이 만개한 길을 걷다보니, 게다가 쏟아지는 물소리까지 들으니 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숲 속 꽃밭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아.”
“그렇지? 게다가 바람이 불 때 마다 나는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도 내가 숲 속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라니깐!”
공원을 걸으며 여기 저기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에서 더위를 식혀간다. 이 만큼이나 대구의 뜨거운 여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버팀목이 있을까?
“100여종이 넘는 조경수목들이 가득 들어찬 공원은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 것 같아. 그런데 여기저기서 책을 읽는 시민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아, 그건 달서구 여기저기에 위치한 도서관들 덕분일거야. 어디서든 15분 이내에 도서관이 있으니까. 우리도 책 한권 빌려서 시간을 보낼까?”
성당못 오색분수를 등지고 서자 기념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대구 학생 의거를 기념하는 2.28 기념탑이다. 저 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애환이 담겨있을까?
“2.28 기념탑이 보존, 관리를 위해 두류공원으로 옮겨 온 것, 알고 있어?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존경심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아.”
“맞아, 저기에 마주 선 대구를 빛낸 선현들도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거야.”
두류공원 옆에 위치한 야외음악당으로 자리를 옮기면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한가득 젊음의 빛이 비친다. 이 곳의 문화는 어떨까?
“오늘 하루 종일을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곳이야. 탁 트인 잔디밭,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그러게, 이렇게 잔디밭에 누워있으면 대구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 저녁의 더위를 식히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
소박한 데이트를 위해 공원의 길을 걸어봅니다. 그러다 도서관에 들려 빌린 책을 벤치에 기대앉아 읽다보면 서서히 뜨거운 태양이 흘러 지나갑니다. 가끔 들려오는 놀이공원 속 활기찬 사람들의 소리도 듣다가, 깔깔대며 웃는 소녀들의 웃음소리도, 또 밤이 되어 젊은이들이 가득 찬 빛나는 소리까지 ! 이 모든 대구의 더위를 식혀가며 삶을 즐기는 대구 사람들의 열정 가득한 모습인가 봅니다. 낮, 혹은 밤이더라도 좋습니다. 언제든 가슴 시원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달서구의 호젓한 공원나들이 나서보는 건 어떠세요?
기차야, 다시 달려라!
- 경기도 의왕시 -
더 이상 ‘칙칙 폭폭’라는 소리를 내며 달리지는 않지만, 기차역에만 서면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지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버스는 너무 느리고, 자동차는 너무 비좁으며, 비행기는 너무 빠르니 여행에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기차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탔던 기차만큼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흔치 않을 텐데, 사이다 한 병에 삶은 계란, 혹은 김밥 한 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오늘의 미션을 수행하기에 딱 알맞은 분일 것 같습니다. <트래블아이>가 권하는 오늘의 미션, ‘기억 속의 기차를 찾아라!’
철도박물관은 1988년, 용산의 철도 기념관을 모태로 하여 개장했다. 증기 기관차부터 전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의 열차 실물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데?
“저 간판을 좀 봐. 역장과 기관사, 안내양 언니의 얼굴까지 새겨져 있어. 모두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야. 웃고 있는 모습들이 즐겁다기보다는 참 아련해 보이는구나.”
“저도 여행을 갈 때 종종 기차를 타곤 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갔던 가족여행처럼 정겨운 모습은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오늘 제 추억 속의 기차도 찾을 수 있을까요?”
박물관 입구에서 건물까지 이어지는 길은 철골로 만들어져 있다. 푸른색이 칠해진 이 철골 길을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추억이 떠오른다.
“조금만 천천히 걷자꾸나. 아주 느린 기차를 타고 다리 위를 건너는 것 같아.”
“아직 박물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추억에 젖으신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어떻게 이 풍경을 잊을 수 있겠니. 산으로 들로, 기차가 달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황홀해 했는지! 내가 어렸을 때에는 기차를 탄 게 큰 자랑거리였단다.”
실내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정면에 놓인 커다란 모형 증기 기관차. 실제 차량은 아니지만, 상상력이 샘솟는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은하철도 999> 속의 바로 그 열차예요! 만화 속의 그 열차에 얼마나 타고 싶던지! 경적도 울릴 수 있는 바로 그 열차 맞지요?”
“맞아. 바로 그 열차야. 저쪽에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정면 모습은 꽤 압도적인데? 앞에 서 있으니 얼른 비켜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내 전시실에서는 세월이 따라 변해가는 기차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증기 기관차인 팟휭빌리부터 디젤 전기 기관차에 이르기까지!
“기차의 변천사를 보고 있으니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난 철도 건널목 모형이 참 마음에 드는구나. 지금도 지방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저것도 곧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발전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때에는 조금 씁쓸해.”
“그런 생각은 못 해 봤어요. 다음에 철도 건널목을 보면 기념사진을 찍어둬야겠네요.”
철도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 철도 모형 파노라마 실.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확인해 보고 가자.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추억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기차가 하나 둘씩 달리기 시작해요! 정말 멋진데요?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가 바로 이곳에 있군요! 야경도 정말 멋져요. 밤기차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아까 내가 했던 말과 비슷하구나. 저 기차도, 이것도 이제 사라져버린 기차구나. 달리는 모습을 보니 좋은데? 이곳은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야.”
실외에는 여러 기차들의 실제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증기 기관차 뿐만 아니라, 대통령 전용 열차까지 없는 것이 없는 진기한 보물창고!
“빨간색에 노란색, 초록색까지! 이 알록달록한 기차들이 한 번에 달린다면 정말 진풍경일 것 같아요. 아까 철도 모형 파노라마 실에서 보았던 것처럼 말예요!”
“몇몇 열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 본 것이구나. 모처럼 철도 박물관에 왔으니, 철로에 누워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철도 박물관에서가 아니면 평생 못 해 볼 일이니 말이야!”
2000년에 비둘기호가 사라졌고, 개통 당시에는 초특급 열차였던 통일호도 2004년에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 층도 비둘기호와 통일호라면 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없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차인가 봐요.” “맞아. 너 어렸을 때 탔던 열차가 바로 비둘기호란다. 완행열차라 가족여행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지. 강촌으로 여행을 갈 때에는 경부선 열차인 통일호를 많이 타곤 했지.”
“아, 기차인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했던 그 열차가 바로 비둘기호군요!”
철도 박물관의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도 바로 이 실외 전시장에 있다. 경례를 하고 있는 기관사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기관석에 올라 기관사가 되어보라!
“이 열차는 실제로 타 볼 수도 있어요! 기관석까지 연결되어 있는데요? 기차 운전 한 번 해 보고, 객실에 잠시 앉아 있다 갈까요?”
“그러도록 하자. 둘 다 아주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자, 네 마음대로 기차를 운전 해 보렴. 너 어렸을 때에는 장래 희망이 기관사였단다.”
철도 박물관은 찾는 사람들 중에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기차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사라진 기차에 대한 그리움을 더 커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도 박물관은 기차를 좋아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기차 여행에 추억을 가진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철도 박물관에 다녀왔다면, 곧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우리 주변의 장소들에서 기념사진을 한 번씩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