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가지 않는 날임에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이 떠졌다. 평소였으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소리에도 밍기적거리며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을 그녀다.
그녀는 사뿐히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질끈 묶으며 커튼을 걷었다. 아침햇살이 눈부셔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금세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아침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찬장에서 우연히 인스턴트 미역국을 집어 들었다. 그때 울리는 문자소리. 휴대전화를 열어본 그녀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임을 알았다. 모 카드사에서 온 고객축하 문자다.
수지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 친절하게도 모르는 이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는 가족이 카드사보다 못하다는 걸.
우연히 집어든 인스턴트 미역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윙하며 돌아가는 늠름한 전자레인지를 뒤로하고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을 했다. 생일엔 왜 미역국을 먹을까. 우리 엄마도 나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까. 그녀는 웬일인지 엄마 생각을 했다.
그녀는 엄마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적이 언제인지 떠올린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떠오른다고 해도 악을 쓰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소리 소리를 질렀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가 미웠고 이후 가족과 등을 지며 살았지만 그녀라고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을까.
온몸이 부서지게 아플 때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말아 후루룩 말아 먹으면 금세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쉬운 대로 끓여먹은 것이 이 인스턴트 미역국이었다.
전자레인지가 임무를 마쳤다는 소리를 낸지도 모른 채 그녀는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고 혹시나 연락이 온 곳이 없나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없다. 그녀는 다시금 창밖을 내다보았다. 얇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연락해볼까 생각했다.
멋쩍은 듯 연락을 하면 뭐라고 할까. 엄마도 나를 보고 싶었다고 할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손 내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긴 그게 쉬웠다면 우리나라도 진즉에 통일을 하더라도 열두 번은 더 했겠지.
잊고 있던 미역국이 생각나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자레인지를 열어 미역국을 꺼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나 엄마일까?
아니어도 상관없다며 마음을 다독이고 문자를 확인했다.
엄마다.
생일축하한다우리딸
미역국은먹었니 인스턴트미역국먹지말고 집으로와
미역국끓여놨어
이게 뭐야. 띄어쓰기도 하나도 안 하고. 무심하게.
하지만 그녀도 안다. 엄마가 문자를 보내기 전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것을.
그동안의 앙금과 미안함과 서운함이 섞인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말 한마디면 될 것을. 서로 그리워했다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표현만 해도 이렇게 쉽게 풀어질 것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그녀는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벌써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조개를 넣고 끓여 비릿한 미역국.
그러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개 말고 쇠고기 넣은 미역국이 더 좋댔잖아!
그리고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을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