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태교가 가장 중요한 거 몰라? 그리고 그렇게 사람 많은 곳 갔다가 뭔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임신하면 좀 예민해진다고는 들었지만 아내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머리에서 뿔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들꽃 같던 아내는 여전히 예뻤지만 입덧을 꽤나 심하게 하더니 좀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여름휴가로 그냥 집에만 있겠다고? 그냥 주말이랑 별다를 게 없잖아. 그리고 자기도 바깥바람 쐬고 그러면 입덧도 좀 나아지고 기분전환도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고 잘 생각해봐.”
“내가 지금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내가 나 좋자고 그래? 이게 다 우리 아가 생각해서 이러는 거잖아.”
네버엔딩이다. 내가 수그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좀처럼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했고 그러는 것이 나도 편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이렇게 집에서 아내와 투덕거리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는 플로리스트다. 그런데 혹여나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하여 임신을 한 뒤로는 꽃꽂이를 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꽃들도 시들어 버리자 그냥 내다버렸고 오로지 아이를 위한 태교음악과 미술전시만 간간히 보러다닐뿐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유난 안 떨어도 된다고 하려다가 더 큰 불씨로 돌아올까 봐 말을 삼켰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하나 빵빵하게 틀지 못하게 하여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선풍기 앞에서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회사 동료 중 한명이 폭포사진을 하나 올렸다.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려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곳의 폭포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것처럼 시원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폭포의 이름이었다. ‘피아노 폭포’. 폭포가 떨어지면서 피아노 소리를 내나? 궁금한 마음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여름휴가로 가까운 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면서 집도 가까우니 한번 다녀오라는 조언과 함께. 머리에 반짝하는 불빛이 들면서 나는 곧장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자기야, 내가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시원한 여름휴가도 즐기면서 태교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이 있는 거야. 어때? 끌리지? 내일 당장 가보자. 절대 휴가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곳 같아서 그래, 이름도 피아노 폭포랑 피아노 화장실이라니까?”
아내는 내 여름휴가 집착증에 두 손을 든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피아노 폭포라는 말에 호기심을 가진 것인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야? 그치? 자기도 막상 나와 보니 기분 좋지? 집에만 있으면 아기도 심심하고 답답할 거야.”
“응, 좋네. 바깥바람도 쐬고. 근데 에어컨 좀 줄일 수 없어? 창문을 열자 차라리.”
아내는 쉬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밝은 모습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피아노 폭포는 교외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곳이 피아노폭포 인듯했다. 그런데 피아노 폭포보다 더 먼저 우리 둘의 시선을 끈 곳은 다름 아닌 그랜드 피아노 모양을 한 건물이었다. 백색의 그랜드 피아노 형식을 한 건물은 화장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수원에 반딧불이 화장실은 들어보았어도 피아노 화장실은 또 처음이다.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 선율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내는 화장실은 찝찝하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은근히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네다섯 살 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92m 높이의 피아노 폭포에 감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하수처리 방류수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폭포라는 데 꽤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에 시원하게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폭포를 보니 멀리 계곡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때? 나오길 잘했지?”
“응, 그러네. 여기 우리 아가 태어나면 또 와도 좋겠다. 아기들 노는 거 보니까 보기도 좋고. 우리아가 빨리 만나고 싶어.”
아내의 입에서 또 오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치 큰 성과를 내 회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오는 그 날에도 피아노 폭포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 같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나를 툭툭 쳤다. 진동이 울려 휴대 전화를 확인 해 보니 메시지 한 통이 도착 해 있었다.
‘절대 잠들면 안 돼. 잠드는 사람이 돼지국밥 쏘는 거야.’
알았다니까 그러네. 나에게도 잠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가 신기할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테이크아웃 해 온 아메리카노 컵에는 물기가 맺혀, 홀더까지 눅눅해졌다. 기차 여행 기분을 제대로 내기 위해 사 온 김밥과 삶은 달걀도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 KTX가 아닌 무궁화호를 탄 지라 부산까지는 다섯 시간. 부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이제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오랫동안 기차를 타니 피곤한 듯 잠든 승객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우리 넷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장난스런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서울 중에서도 강북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저 먼 남쪽 끝 부산으로의 여행을 결심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부산에 연고지가 있는 친척도 없었고,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직구장을 보러 부산까지 갈 만큼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다.
부산의 명물인 돼지국밥이나 밀면, 씨앗 호떡 같은 것들도 보성에 가면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주에 가면 비빔밥을 먹듯이 당연한 수순일 뿐. 우리에게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같은 것들도 가까이 있는 만리포나 정동진과 별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부산이 부산이어서 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부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야, 이왕에 여행을 갈 거면 부산 정도는 돼야지!”
그렇다. 내가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말 한 마디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여행다운 여행이었다. 부산에 가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KTX가 아닌 완행열차를 택했다. 비둘기호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무궁화호 대신 비둘기호를 택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은 서울역을 출발하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섯 시간 동안 조용히 명상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기차 안에서 여행 계획을 짜기로 했다. 우리들의 규칙은, 절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조사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의 모든 것들은 여행 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 네 시간 동안 우리는 휴대 전화로 관광지를 짜고, 수첩에 메모를 하고, 실제로 가보고 싶은 풍경의 사진들을 공유했다. 여행 계획을 짜는 동안 여행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우리들의 작전을 듣고 코웃음을 쳤던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설렘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몰운대와 보수동 책방 골목, 동백섬, 영화의 거리, 범어사와 영도다리, 광안대교까지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을 모조리 수첩에 적었다. 하루가 걸린다면 무박 여행이 될 것이고, 일주일이 걸린다면 일주일짜리 긴 여행이 될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우리 네 명 모두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 왔으니, 여비 걱정도 없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면서 도착하기를 기다려 본 건 난생 처음인 것 같다, 야.’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한 마디를 읽고, 우리는 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났다. 다섯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으니, 여행의 시작은 성공적인 셈이었다. 부산역은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행자들의 도시. 나는 부산에게 붙여 줄 첫 번째 타이틀을 이것으로 정했다.
기차에서 떠들지 못했으니, 도착하자마자 남자 애들 답지 않게 수다가 만발했다. 친구 한 녀석이 입이 근질근질해 죽는 줄 알았다며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가 왔다!”
제 갈 길을 찾아 바삐 움직이던 여행자들이 뒤를 돌아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가 왔다. 작전명, 부산 정복.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부산을 헤맬 것이고, 우리가 본 모든 것들이 우리들만의 부산을 만들 것이다.
장갑이며 목도리를 챙기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서기가 꺼려질 정도로 추워졌다. 어느 새 또 겨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손발이 얼었다.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머니는 일찍 잠들어 계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잠드는 일이 없으셨는데, 요즘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았다.
“저 왔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깨시지 않게 나지막한 인사를 건네 보았다. 식탁에는 어김없이 내 몫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몇 달 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어깨와 허리에 잦은 통증을 느끼시는 것 같은 모습에 모시고 갔던 것인데, 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큰 병은 아니나 젊을 때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일찍 무리가 온 것이라 하셨다.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빨리 병원에 왔을 텐데.”
“나이 들면 여기저기 쑤시고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일일이 보고를 하냐.”
어머니의 말에 멍해졌다. 나는 이제야 겨우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벌써 노인이 되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모습이 싫어 아프다는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계셨을 어머니를 상상하니, 코끝이 짠해져왔다.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머니와 보내기로 결심했다. 내일 저와 함께 어디를 좀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당연히 혼자 집에 계실 것을 예상하셨는지 아주 기뻐하셨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했더니, 번화가나 케이크는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은 정자항.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 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 겨울하면 대게였으며, 어머니도 대게를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예요, 크리스마스니까 무엇 하나는 빨간 색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애교 아닌 애교에, 어머니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셨다.
휴일이라 그런지 차가 조금 밀렸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 단위로 북적이는 정자항에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수족관 안에 알이 꽉 찬 대게들이 엉켜있는 것을 보니, 대게 제철인 것이 실감났다. 저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버둥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정말 신선해 보였다. 평소에 자주 먹는 꽃게도 꽃게지만, 제대로 게 먹는 기분을 내려면 역시 대게가 최고다.
이왕에 먹는 거 좀 더 좋은 걸로 먹자 싶어서 박달대게를 선택했고, 젊은 시절에 바닷가에 사셨다는 어머니는 자신 있게 가장 실한 대게를 골라내셨다. 가게 2층이 바로 초장집이라 돌아다닐 필요 없이 바로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건너편에 앉은 내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셨다.
“석규야, 기억나니? 너 어렸을 때에도 여길 한 번 왔었단다. 그 때는 네 아버지도 함께 왔었는데, 아버지 손바닥보다도 훨씬 더 큰 대게가 무섭다며 네가 우는 탓에 애를 좀 먹었지. 그랬던 꼬마가 이제는 다 컸구나.”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 때 나는 혼자서는 게를 먹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게를 만지면 날카로운 집게발이 나를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혼자 나를 키워내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식당 일이며, 가정부 , 청소부 일까지. 어머니가 안 해 보신 일을 찾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 앞에 푹 삶아진 대게 세 마리가 나왔다. 종업원이 가위를 들고 대게를 자르려는 것을, 내가 직접 하겠다며 돌려보냈다. 어머니 몫의 앞 접시에 내가 직접 손질한 대게를 한 조각씩 올렸다.
“저도 이제 다 컸으니, 안심하시고 저한테 의지하셔도 돼요.”
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구수하고도 포근한 겨울의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대게에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웃고만 계셨다.
주말아침부터 남편은 머리가 복잡하다며 아스피린을 찾았다. 얼마 전 이직한 회사에서의 업무스트레스와 잦은 야근 때문인 것 같다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사실 과도한 피로를 풀지 못한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삶에 쉼표 하나 그리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꼬맹이는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는 아빠 다리에 매달려 놀러가자고 성화였다. 남편은 그저 쉬고 싶다며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동화책 하나를 쥐어주었다. 아이는 동화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꾸만 남편을 귀찮게 했다.
“자기야 그러지 말고 오늘 망우리 공원 다녀오는 거 어때? 자기도 맑은 공기 쐬면서 머리 좀 식히고 우리 집 요 꼬맹이랑 놀아주기도 하고. 응?”
남편은 보나마나 귀찮다고 하겠지만 특기에 없는 콧소리를 내가며 애교를 부렸다. 애교가 먹혔는지 아니면 정말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였는지 남편은 선뜻 그럴까 했다. 남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간편하게 나들이 짐을 꾸렸다.
망우리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분산되어 머무르고 있었다.
“자기야, 여기가 사색의 길이래. 오늘 여기 걸으면서 생각들 좀 정리하고가.”
아이는 모처럼 나온 나들이 길에 신이나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이를 진정시키고자 불러 세웠다.
“도진이 너,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엉, 여기 공원이잖아. 공원!”
“맞아, 공원이야. 그런데 여기 원래는 공동묘지였어. 도진이 공동묘지 알지? 으으으 귀신 나오겠다!”
아이를 골려주니 으악 하면서 아빠 품으로 쏙 숨었다. 아이를 골려주려고 꺼낸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공동묘지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휴식공간으로의 탈바꿈을 거치자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곳이다. 사실 아이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도진아, 엄마가 여기는 ‘사색의 길’이라고 했지? 사색의 길이 뭐냐면 조용히 생각을 하며 걷는 길이란 뜻이야. 도진이 학교 복도를 걸을 때 조용조용히 걸어야 하지? 도서관에서처럼.”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도 그렇게 걷는 거야. 조용히. 그리고 엄마가 여기가 공동묘지라고 했지? 무서워 할 것 없어. 이곳에는 일제에 항거하신 독립운동가 그리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소파 방정환 선생과 같은 선생님들이 계신 곳이야.”
언제부턴가 아이와 함께 남편도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남편과도 이곳은 처음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늘 집근처 공원이나 한강을 찾곤 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이곳을 오자고 우긴 이유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 말을 백프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알아듣겠다는 듯 이마에 힘을 잔뜩 주고 뒤꿈치를 살짝 들며 사뿐사뿐 걸었다. 아마 복도에서 걷듯이 조용히 걸으라고 한 탓이었다. 웃음이 풋 나오려는 걸 참고 나도 사색에 잠겨보려 했다. 오랜만에 남편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이곳이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공간이 아닐까. 전혀 무섭지도 오싹하지도 않은 담담하고 경건한 느낌이었다. 공원의 또 다른 모습이자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이랄까. 서울의 화려한 겉모습에 이렇게 잠잠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오묘했다.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길이 사색의 길인만큼 혼자만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저 남편이 눈을 떴을 때 모든 근심이 내려놓아지길 바랄뿐이다.
“엄마 왔어. 짜잔! 우리아들이 좋아하는 호두과자!”
“야호! 신난다. 우리 엄마 최고!”
“우리 민수 퇴원하면 엄마가 호두과자 더 많이 사줄게. 혼자 심심하고 무서웠을 텐데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정말? 정말이지? 수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호두과자 많이 먹을 날도 얼마 안남은거네? 맞지? 응?”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무균실 밖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담당 전문의의 호출이라고 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망이 없다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수술이 며칠 안 남았는데 도대체 왜이러시냐고 무릎을 꿇고 빌어보기도 했다. 의사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말만을 내뱉었다. 의사에게 너도 자식 키울 것 아니냐며 악을 질러보았지만 의사는 이해한다는 말만 했을 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이민을 가자고 했고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왔어도 천사 같이 웃어주던,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도 울지말라며 손을 잡아주던 천사 같은 민수의 모습이 더욱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민수를 그리워했지만 눈물짓지는 않았다. 남편과도 민수의 생일날 이외에는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나누려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점점 기억 속에 무뎌져 있었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이민을 떠난 후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쾌청한 하늘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 했다. ‘변한 것이 없구나. 나 밖에’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어쩐지 주위에 호두과자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호두과자. 우리 민수가 참 좋아했는데. 퇴원하면 양손 가득 넘치도록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40여년만의 기억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고 민수와 이별하던 날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맞물리는 것만 같았다.
딸랑 거리는 현관문 종소리가 울리고 친절해 보이는 점원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주문했다. 갓 담겨 나온 호두과자는 따뜻했다. “우리 민수 손처럼 따뜻하네.”내가 봉지를 받아들며 속에 있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가로운 공원에 한참을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땀으로 다 젖도록 뛰어놀던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찾으러 왔다.
“이제 그만 가자. 배 안고파? 점심도 안 먹고 이렇게 뛰어놀게.”
“배고파. 엄마, 근데 나 저기 할머니가 들고 있는 호두과자 먹고 싶어. 나도 사다줘. 응? 엄마~”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무슨 호두과자야. 얼른 가자. 엄마 지갑도 안가지고 나왔어.”
“싫어, 나 호두과자, 호두과자~”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를 보니 우리 민수가 더욱 아련했다. 아이 엄마에게로가 먹으려고 샀는데 못 먹게 되었다며 괜찮으니 아이를 주어도 된다고,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단 것을 좋아하나보다고 호두과자를 건넸다. 아이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아이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
그나저나 금방 온다고 하던 남편이 오지 않는다. 다시금 그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데 어디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남편이다. 남편의 손에는 따뜻한 호두과자가 들려있다.
“아무튼 노인네가 몸에 좋은 거라면 눈빛부터 달라지신다니까?”
“그러니까. 저렇게 몸 생각해서 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나 몰라? 그때 봤어요? 삼계탕 나오는 날. 다들 한 그릇씩 배정 받는데 혼자 배부른데도 두 그릇, 세 그릇씩 먹는 거.”
급식 아주머니가 삼삼오오 모여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로 이름을 떨친 할아버지는 그저 몸에 좋은 것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으셨다. 아들이 서울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있고 며느리가 약사라는데도 무엇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더군다나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로 소위 자식농사 번지르르하게 지어놓고 왜 저러나 모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꼭 교회에서 봉사하는 무료급식을 빼놓지 않고 찾아드셨고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노인의료봉사에 가장먼저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다. 그런 날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니, 아들이 의사인데 용돈을 안주나? 연락도 안하고 사는 거 아니야?”
“누가 아니래요? 꼭 아픈데도 없는데 의료봉사 선생님들 오면 가장먼저 혈압이다 뭐다 심지어는 외과선생님한테 구강검사까지 받더라니 까요.”
“아이고, 노인네가 지금도 정정하고만 얼마나 이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런데요?”
“누가 알겠어요. 아이고, 저기 오시네.”
할아버지의 시간은 정확했다. 늘 오전 6시에 일어나 30분간 맨손체조를 하고 7시에 아침을 드셨다. 할아버지의 시간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생각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제일먼저 와계셨다.
“왜 이리 늦어! 어? 젊은 사람들이 이래 굼떠서야 어디다 쓰겄어?”
“아이고, 할아버님 나오셨어요? 오늘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시네~”
“퍼뜩 가지고 와봐라, 오늘은 어떤 놈이 왔나.”
“오늘은 아주 좋은 놈들로만 골라왔는데, 할아버님께서 가장 먼저 오셨으니까 가장 좋은 걸로 보여드리는 거예요.”
인삼이다. 좋은 놈으로 골라왔다던 남자의 말처럼 실하고 굵었다. 언뜻 보아도 값어치가 나가 보이는 삼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약장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물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놓칠 리 없었다.
“어머, 이제는 인삼이네? 저 할아버지 200살까진 끄떡없겠어.”
“저번에도 인삼 좋은 걸로 하나 사가시는거 봤는데. 이번에 또 사가시네? 인삼주라도 담그시나? 자네가 한번 넌지시 물어봐봐. 어? 궁금하잖아.”
여자는 남자의 등을 떠밀면서 할아버지께로 보냈다.
“아, 할아버지 나오셨어요? 오늘은 와, 인삼 좋네요.”
“그렇지? 일찍 나오길 잘했어 아주. 좋은 놈으로 골랐네.”
“그런데 할아버님은 어떻게 이렇게 정정하세요? 이게 다 인삼 덕분인가 봐요?”
“내가 먹을 거 아니여. 우리 아들 줄 것이지.”
“아드님이요? 아니 아직까지 의사 아드님 몸보신까지 신경 쓰시는 거예요?”
“하이고, 의사는 무슨 의사. 내 소원이 뭔지 아나. 그저 아들보다 딱 하루 더 오래 사는 거라. 몸에 좋다는 거 정신에 좋다는 거 다 먹여 보는 거지 뭐. 더 말하면 뭐하겄어.”
할아버지의 아들은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 돌연 사고로 인해 장애판정을 받았다. 동네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매번 대학병원에 들락날락 하는 일이 아들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체력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는 괜한 푸념을 늘어놓았다며 씩씩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아들의 그림자가 비췄다.
사람들 발만 보고 있어도 현기증이 올라왔다. 대전역 1번 출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고 있어서 그런지 반소매를 입고 있는 사람부터 가벼운 카디건을 입은 사람까지 통일감이라곤 없어서 더욱 북적임이 심했다.
현영은 1번 출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초조한 마음에 한쪽다리를 살짝 떨고 있었다. 애꿎은 휴대전화 버튼만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멀리서 할아버지 한분이 같은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 괜히 끼어드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계속 1번 출구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 옆에는 8살쯤으로 보이는 꼬마아이도 보였다. 옆에서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도무지 신경을 집중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할아버지께로 다가갔다.
“저기. 할아버지. 어디 찾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고맙네. 한밭교육박물관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되는지 모르겠네.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오늘따라 길을 자꾸 헤매네, 허허”
할아버지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옆에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서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아, 한밭교육박물관이요? 여기에서 가까워요. 이 근처에요. 여기에서 가셔도 되고, 3번 출구로 나가시면 더 가깝고요.”
“아 그런가? 고맙네, 고마워.”
할아버지는 서양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중후한 노년의 신사 모습이었다. 어쩐지 박물관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꼬마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주였을 것이고 주말을 이용해서 아이와 박물관 나들이를 하시려는 듯했다.
한밭이라. 대전에 쭉 살면서도 한밭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참 생소했다. 최근에는 한밭대학교나 한밭수목원, 한밭야구장까지 대전이라는 지명을 한밭이라는 옛 지명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약간의 시대적 이질감이랄까? 그런데 아까 만난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한밭이라는 단어는 참 정감 있었다. 할아버지와 잘 어울린달까?
현영이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친구가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친구는 오늘 약속시간에 늦은 대가로 오늘 현영이 하자는 것에 군말 없이 따른다고 했다. 현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친구에게 뜻밖의 장소에 가자고 했다.
한밭교육박물관이었다. 지금 그곳에 간다면 아까 마주친 할아버지와 꼬마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물관? 무슨 황금 같은 주말에 박물관이야~ 우리가 무슨 열혈 초등생이니?”
“방금 전에 내가 하자고 하는 거 군말 없이 따른다며! 그리고 원래 배움에는 끝이 없는 거야!”
친구의 팔을 잡아당기다시피 하여 도착한 한밭교육박물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았지만 역 근처처럼 복잡한 느낌은 아니었다. 정돈된 느낌이 가지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밭이라는 느낌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꼬마가 있는 그림이 썩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많은 꼬마손님들이 갖가지 민속체험을 하며 하하 호호 웃음소리를 냈다. 전시공간에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책들이 있었다. 현영은 전시를 구경하며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까 만난 할아버지와 꼬마아이를 찾는 중이었다.
‘벌써 가셨나? 아쉽네.’
현영이 관람을 마친 뒤 뒤돌아 나가려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와 꼬마아이 모습이 보였다.
현영은 빙그레 웃었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바람은 쉽게 그칠 줄 몰랐다. 딸애가 겨우내 입으라고 옷을 사왔다. 남편 것이랑 내 것 두 개다. 나는 받아들자마자 대뜸 ‘어디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애는 비싼 거야, 됏수? 이런다. 비싼 거란다. 하기야 어디꺼냐고 묻는 말에 비싼 거라고 돌아온 대답이 썩 틀린 대답도 아니었다. 손주들을 마치 대단한 선물인양 품에 쥐어주고는 이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맡기고 저들끼리 하하 호호다. 물론 손주 새끼들 안 예쁜 노인네야 없겠지만 저들 하는 짓이 얄미워 그런다.
남편과 나는 일찍이 정년퇴임을 마치고 그야말로 까마득할 줄 알았던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용한 걸음으로 가까운 예배당에 나가 자식들 안녕을 바라고 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일도 없다. 손주들을 봐줄 때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과자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꼭 사달라고 떼쓰면 유기농과자 사 먹여라, 비디오테이프 틀어주지 말고 책 읽게 해라, 당근은 잘 안 먹으니 곱게 다져 티 안 나게 먹여라. 별 유난을 다 떤다고 비웃으며 나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고 하면 이를 바드득 갈며 그래서 자기가 이런 거라며 대든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염색 좀 하란다.
“엄마, 제발 염색 좀 할 수 없어? 진짜 할머니 같애.”
“그럼 내가 할머니지 아가씨게? 그리고 너도 곧 늙어 이것아.”
“누가 나는 안 늙는대? 그러니까 곱게 티 안 나게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살라는 거지.”
늙으면 늙는 거지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늙는 건 또 뭐람. 그리고 염색약 한 번 사다 준 적 없는 것이 매번 말로만이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딸애다. 딸애의 전화를 받으며 무심코 식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이 5월 8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나가서 밥한 끼 먹고 여느 때보다 두둑한 용돈이 담긴 흰 봉투 하나면 끝이더니 이번엔 무슨 일인지 가족야유회를 가잔다. 내가 억새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나. 지나간 말로 흘린 적이 있었는데 김 서방이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김밥이다 유부초밥이다 바리바리 싸왔는데 딸애 가족은 캐릭터 돗자리에 유기농 과자, 유기농 과일이다. 김 서방은 웃으면서 하나 드셔 보라고 권했지만 딸애의 찌릿한 눈총에 됐다고 했다. 어느새 자기 둥지를 틀어 자기 새끼들만 돌보는 자식들을 볼 때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가도 젊은이들 상대로 피어오르는 질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산 정상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바람에 따라 한들한들 춤을 춘다. 흰색으로 보였다가도 금세 은빛을 띤다. 부스스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억새를 보니 벌써 가을인가 싶다. 내 나이도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다.
꼿꼿하던 몸과 마음으로 살았던 2, 30대를 지나 점점 세월이 지나고 보니 스쳐 가는 바람에도 몸을 눕히는 60대가 되어버렸다. 손주가 은빛 억새를 보고 할머니 머리랑 똑같다고 깔깔거린다. 딸애는 거보라며 ‘진작 염색 좀 하지’란다.
난 이렇게 흰 아니 은빛 내 머리가 좋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니까. 그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정당함이라고 생각하니까. 늙음을 애써 감출 필요 뭐가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듯 세월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몸을 눕힐 줄 아는 지금의 나이가 좋다. 아무렴 좋다.